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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Mar 01. 2021

그날 나는 십 년 전의 나를 용서했다

벼락 거지의 투자 에세이


대학생인 딸이 부산에 다녀온다고 말했을 때, 나는 조금 망설였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딸은 친구와 동행하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그 친구의 성별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딸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심증은 있었지만 대놓고 묻지는 못했다. 딸의 입에서 당돌하게도 '남자 친구 맞는데?'라는 말이 나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일단 '그래 일단 알았다.'라고 말은 해 놓았다. 그리고 조만간 우리 둘째 딸에게도 닥치게 될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혼자 고민에 빠졌다.  그날 밤 나는 자리에 누워서 딸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지는 못했다. 요즘 나를 괴롭히던 묵은 고민이 이 새로운 이슈를 누르고 나의 의식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전의 나'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 10년 전의 나는, 안타깝게도 집을 팔았다. 아마도 그때 나는 미쳤거나 뭐가 씌었거나 아님 둘 다였을 것이다.  이 글의 소제목이 말해주듯이, 1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벼락 거지로 만들었다.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맞기는 한 것일까? 그때의 나는 왜 그런 결정을 했던가.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는 내 손모가지를 거칠게 잡아채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맞지만, 아무래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성격 탓인지 아니면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부모님의 영향 탓인지는 모르겠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의 나는 대출이 많은 그 집이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 같긴 하다. 아니다.  이 시점에 조상 탓은 가장 쉬운 핑계일 뿐이며 조금 비겁하다. 친정 가족들 중에는 집을 몇 채씩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조상 탓이 아니라면 음... 그렇다면 그때의 나는 왜 그런 철없는 결정을 내린 것일까? 나는 10년 전의 나를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밤마다 10년 전의 나를 거칠게 심문하고 있었다.






  


그날 밤, 취조에 시달려 왔던 10년 전의 내가 지친 표정으로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오물거리는 그의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철딱서니 없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턱주가리라도 날릴 기세였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네가 무엇을 이야기하든 너는 틀렸다고, 그때는 맞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너는 정말 틀렸다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 생각에는 바보 같지만, 그때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천천히, 흥분한 내가 알아듣기 쉽도록 숨을 고르면서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빚을 갚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 하는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고. 빚 걱정 때문에 오르지 않는 나와 남편의 월급을 원망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사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1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어쩐지 더 성숙해 보였다. 그는 탐욕에 가득 찬 늙은 나의 이마에 축 늘어져 있는 흰머리 한 올을 지긋이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은 네가, 30년 상환의 빚을 갚으며 힘들어할 것을 미리 걱정했었다고. 젊은 나는 집 없이 사느라 자존심 좀 구겨도 까짓 거 괜찮았다고. 나는 은퇴와 노후를 걱정하고 있을 10년 후의 너에게 그동안 준비한 노후자금을 손에 쥐어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는 망설이다가 결국 이 말을 했다. 10년 후의 너는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에도 주눅 들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집값이 터무니없이 올라버린다 해도 집을 팔아버린 나를 미워할 만큼 미혹한 인간은 아닐 줄 알았다...... 나는 그날 밤, 비로소 비밀 같았던 10년 전의 나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 나를 미워하고 비난하면서 일상을 분노와 후회로 가득 채웠던 내가 시 부끄러웠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때의 나는 삶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날 나는 10년 전의 나를 용서했다. 아니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용서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날 밤, 우리는 윤동주 시의 한 구절처럼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당신에게는 미친 짓처럼 보이는 일이 나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에 근거해서 주어진 순간에 자신에게 합리적을 보이는 의사결정을 내릴 뿐이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P43






 나는 딸에게 무엇을 말해주어야 하는가. 10년 전의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그 많은 날을 괴로워했던 내가 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타인의 삶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현재를 살아야 하고 딸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그것은 딸의 몫이다.



 다음날, 나는 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딸은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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