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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죽음의 결과보다도 과정이 중요하다

봉준호 <미키 17(2025)> 리뷰

by 새시

<미키 17>은 인간을 프린팅하는 기술이 개발된 미래 시대에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죽음을 직업으로 행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러한 소재를 활용해 사랑과 생명, 존재에 대한 질문을 자기만에 방식으로 관객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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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근본적이고 단순한 것

<미키 17>에서 봉준호 감독은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과 연인인 '나샤(나오미 애키 분)'의 사랑을 통해 '사랑은 근본적이고 단순한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들의 사랑은 만남부터 단순하게 묘사되는데, 함선의 지도자이자 독재자로 묘사되는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 분)'의 연설 중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작품은 많은 칼로리 소비로 인해 성관계를 금지할 계획을 설파하는 연설 중 눈이 맞는 연인을 통해 사랑은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근본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미키 18'의 출현 후 보이는 사랑의 모습은 '단순함'이다. '나샤'는 '미키 17'과 '미키 18'이 동시에 존재하는 멀티플 현상을 맞닥뜨리자, '미키'가 두 명이 되었다고 좋아한다. 얼핏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러한 부분은 '사랑'이 단순한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작품은 서술적 트릭을 통해 이러한 황당함을 감동으로 이끌어낸다. '미키'가 신경가스 실험으로 인해 실험실 안에서 죽어갈 때, '나샤'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험실에서 죽어가는 '미키'와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멀티플' 상황에서의 '나샤'의 행동보다 먼저 일어난 행동이었으나, 작품은 의도적으로 해당 행동의 서순을 뒤로 배치해 '나샤'의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 단순한 반응을 '사랑은 강력하게 단순한 것'으로 감동적으로 읽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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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은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이러한 단순성은 작품의 서사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다. '케네스 마샬'과 '일파 마샬(토니 콜렛 분)' 부부는 비효율성을 이유로 섹스를 제한하고, 목적이 '니플헤임' 행성에 도달하면 큰 규모의 섹스 캠페인을 시행하겠다고 연설한다. 그들에게 섹스는 칼로리를 많이 소비하는 비효율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연인은 그저 사랑하기에 무수한 섹스를 한다. 섹스는 생명을 잉태하는 근본적인 행위이면서도 두 생명체가 사랑하기에 하는 단순한 행위이다. 섹스를 인구수를 늘리려는 행위로만 보는 '마샬' 부부에게는 생명은 그저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이다. 작품은 서사가 진행되는 내내 그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니플헤임'의 환경을 조사하다 '제니퍼'가 죽음을 맞았을 때, '케네스 마샬'은 '익스펜더블'인 '미키'가 대신 죽지 않았음을 질책하며, '제니퍼'의 죽음을 '가임기 여성'의 죽음이라 칭한다. 그들에게 생명은 하나의 주체가 아닌 공장의 소모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키'의 16번의 죽음도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작품 내 ‘마샬’ 부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미키’의 죽음에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는 질문을 ‘미키’에게 지속적으로 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반응은 ‘익프펜더블’인 ‘미키’가 죽음 이후에도 다시 프린팅 되기 때문이다. 이는 ‘죽음’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닌 그로 인한 결과에만 주목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죽음’의 과정에 집중하는 이들은 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 ‘미키’의 죽음에 유일하게 분노하는 인물인 연인 ‘나샤’는 ‘니플헤임’의 토종 지적 생명체인 ‘크리퍼’를 살리기 위해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며, ‘미키’의 죽음에 신경을 쓰는 유일한 연구원인 ‘도로시(팻시 패런 분)’는 ‘크리퍼’가 지성을 가진 생명체임을 알아차리고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죽음의 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하는 ‘마샬’ 부부는 이로 인해 전쟁을 일으켜 많은 생명들을 학살할 뻔했지만, 죽음의 과정을 인식한 캐릭터들로 인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은 생명의 가치에 대해 작품이 말하는 메시지를 담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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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진짜 미키인가’라는 질문

<미키 17>은 관객에게 ‘누가 진짜 ‘미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미키’는 죽음을 겪을 때마다 백업돼있는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새로운 몸으로 프린팅된다. 이전의 ‘미키’와 이후의 ‘미키’가 같은 사람 인가 하는 의문은 작품 내내 관객들에게 주어지는데, 중반부 발생하는 ‘멀티플’ 이후에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이에 대한 답은 ‘미키 18’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미키 18’은 기존의 ‘미키’와 상당히 다른 성향을 가진 존재이다. 작품 내내 소심하고 순한 모습을 보였던 ‘미키’들과 다르게 ‘미키 18’은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키 18’과 ‘미키 17’이 처음 만나는 순간, ‘미키 18’은 ‘미키 17’을 망설임 없이 죽이려 한다. 이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미키 18’이 별개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변하게 된다. ‘미키 17’이 ‘케네스 마샬’에게 잔인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분노하여 ‘케네스’를 죽이려고 하는 장면은 ‘미키 18’ 역시 ‘미키’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키’가 자신으로 인해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함에서 오는 죄책감에 대해 ‘사실 네 잘못이 아닌 거 알고 있지 않았냐’고 말하는 장면은 그 역시 ‘미키’라는 점을 더욱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한 이유로, ‘미키 18’이 자의로 ‘미키 17’을 포함한 사람들을 살리고 죽음을 택한 것은 자신의 이면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극후반부 ‘미키’가 꿈속에서 ‘일파 마샬’을 만나는 장면은 이러한 과정의 연장선인데, ‘미키 17’은 ‘미키 18’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통해 ‘일파’에게 ‘꺼져’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키 17’과 ‘미키 18’이 보여주는 모습 모두 ‘미키’의 모습이라는 점을 통해 작품은 ‘누가 진짜 미키인가’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로 오류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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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악역인 ‘케네스 마샬’과 ‘일파 마샬’의 모습이 평면적이면서도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지만, 이는 ‘봉준호’라는 이름값에 비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일 뿐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다. 본 작품은 복제인간을 다룬 작품들이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루면서도 이를 통해 생명의 가치에 대한 논제를 내내 던진다. 물론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봐도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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