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츠 질발로디스 <플로우(2024)> 리뷰
고양이, 리트리버, 여우원숭이, 카피바라가 한 애니메이션에 나온다면 대부분은 <마다가스카> 같은 작품을 생각할 것이다. 귀여운 동물들이 자신의 특징을 살린 채 인간처럼 행동하며 웃음과 감동을 주는 그런 작품으로 말이다. 실제로 <플로우>에 등장하는 위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이미지는 (뱀잡이수리를 제외하면) '귀여움'이며 작품은 실제로 이들을 상당히 귀엽게 묘사한다. 다만, <마다가스카>처럼 의인화하는 방식 대신 대사가 일절 없이 그들의 습관을 세밀히 묘사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행태를 묘사한다. 실제 제작진의 반려 동물들의 습관을 관찰하며 구상했다는 이러한 동물들의 행태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낼 만큼 세밀하다. <플로우>는 이러한 귀여운 동물들을 통해 '연대'의 중요성을 내내 설파하는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플로우>의 가장 큰 특징은 동물들의 특성을 세밀하게 묘사해 냈다는 점이다. 고양이의 각종 귀여운 습관들과 여우원숭이의 반짝이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세밀함은 약간은 지루하게도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목적 없이 '흘러가는(Flow)' 본 작품의 서사에 흥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세밀함은 등장인물들에게 '다름'을 부여하는데, 이러한 '다름' 속에서도 그들은 연대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은 이렇듯 동물들의 행태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그 자체로도 흥미를 자아내고, 또한 이를 활용해 그려낸 '다름'으로 그들의 연대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낸다.
<플로우>는 성경의 '노아의 방주'의 모티프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큰 홍수에 배 한 척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플로우>는 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담고 있는 가치 대신 현대적 가치를 활용한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는 인간 위주의 차별적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노아'가 동물의 극소수만 선별하여, 동시에 이로운 동물과 해로운 동물을 구분하여 방주에 실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플로우>의 방주 속 동물들은 주체적이다. 그들은 인간에 의해 선별된 동물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방주에 올라간 이들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 방주의 동물들은 단지 종을 보존하겠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에서 선별되었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은 자신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러한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작중 중요한 위치로 등장하는 뱀잡이수리와 고래의 존재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뱀잡이수리는 주요 등장인물들과 함께 동행하는 캐릭터지만, 각자의 성장을 겪는 동료들과 달리 첫 등장부터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다치면서도 남을 위하는 모습은 예수의 모티프로 느껴지는데, 실제로 작중 그는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이내 빛과 함께 하늘로 떠나버린다. 고래는 작중 내내 '기적'과 같은 방식으로 등장하는데,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고양이를 구해주는 등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불현듯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러한 고래도 극후반부 드러난 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신의 시대 이후 인간의 시대가 온 실제 역사와 매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품은 고래의 모습을 보여준 이후 다 같이 뭉쳐서 물 위에 비친 모두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을 이어서 보여줌으로써 신의 존재가 희미해진 인간 중심의 현대 사회에 연대가 더욱 필요함을 말한다.
이들의 주체성은 그들의 연대를 이끌어낸다. 우연히 만나 우당탕탕 앞으로 나아가던 그들은, 거센 위기 앞에 서로를 구하고 서로 의지한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의 연대가 강해질수록 그들의 동물성이 옅어지는 점은 상징적이다. 디테일한 모습으로 그들의 본능적 행태를 묘사하던 작품은 점점 그들의 여정이 깊어지면서 그들을 인간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혼자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이를 포기하고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반짝이는 것에 집착하던 여우원숭이는 이를 포기하고 역시 동료들을 찾아다닌다. 뱀잡이수리는 자신보다 약자인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날개를 희생하며 리트리버는 토끼를 쫓으려는 본능을 꺾고 동료를 구한다(사실 카피바라는 항상 착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동물들의 그것보다는, 인간이 보여주는 모범적인 가치에 가깝다. 작품은 이를 통해 대립이 가득한 현대의 인간 사회와 대립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연대는 가장 순수하고 본능적인 가치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결말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거울과 물을 통해 자기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던 그들이 마지막 장면에 다 같이 물에 비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플로우>는 무려 '블렌더'라는 무료 툴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이로 인해 가끔은 게임 트레일러로 느껴질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특징은 다소 잔잔한 서사에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로우> 속 잔잔한 서사와 이미지 속에 담겨 있는 연대의 가치는 대립이 극도로 심한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이다. 점점 대립이 거칠어지는 시대지만, <플로우>에서 캐릭터들이 보여준 것처럼 연대가 대립을 압도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 국제영화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