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안 셔젤 <위플래쉬(2014)> 리뷰
피가 튀고, 의자가 날아다니고, 고성이 빗발치는 영화가 있다. 놀랍게도 이 영화에는 폭력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굉장한 긴장감으로 내내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정신을 차리기 힘든 본 작품은 음악 영화인 <위플래쉬>다.
<위플래쉬>는 드럼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꿈에 대한 집착과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질문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이 가진 재능의 한계를 넘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를 학대하는 '플레쳐 교수(J.K. 시몬스 분)'의 존재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 그 자체이다. '꿈을 위한 학대와 자기 파괴는 용인되어야 하는가'라는 이러한 질문에 작품은 답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관객에게 드럼 비트와 함께 전달되는 굉장한 긴장감은 압도적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플래쉬>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특징은 역시 '긴장감'이다. 폭력적인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음에도 긴장감은 여타 작품들을 월등히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감은 '앤드류'와 '플레처 교수'의 존재에서 나온다. '플레처'는 학생의 재능을 개화시키기 위해 폭력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스몰 토크로 얻어낸 '앤드류'의 가정사를 바탕으로 폭언을 하는가 하면, 그의 박자가 옳지 못하다는 이유로 의자를 머리에 던지기도 한다. '앤드류'는 이러한 교육의 피해자이다. 하나, 그 역시 '보통 사람'으로 머무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폭력을 끝까지 감내한다. 그는 '플레처'에게 분노하면서도 특별해지고 싶다는 일념 하에 그를 따른다. 그 과정은 직접적인 폭력이 없는 일종의 학대지만, '앤드류'가 용인했다는 점에서 자기 학대로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이러한 자기 학대에는 피와 상처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 과정은 굉장히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가슴을 울리는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를 고압적으로 다그치는 '플레처'의 모습과 그에 분노하며 드럼을 두드리는 '앤드류'의 모습이 얽히면서 생기는 갈등이 굉장한 전달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보이는 '마일즈 텔러'와 'J.K. 시몬스'의 연기와 자주 등장하여 드럼을 적시는 피의 이미지는 이러한 긴장감이 관객석으로 강렬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본 작품의 주요 주인공 중 한 명인 '플레처' 교수는 누가 뭐래도 작품의 악역이다. 하나, '플레처' 교수는 작품의 논제를 그대로 담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예술에 대해 그가 가진 진심은 진실되었기 때문이다. 후반부, '앤드류'의 증언으로 교수직을 내려놓게 된 이후에도 음악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한 점에서, 결말부 '플레처'가 '앤드류'를 속이고 다른 악보를 준 행동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플레처'가 말 그대로 '앤드류'를 엿먹이기 위해 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 하에 '플레처'는 천재성을 개화하기 위해 수많은 악행들을 했다는 그의 말과 대치되는 찌질한 행동을 한 셈이다. 이에 따르면 마지막 '앤드류'의 돌발적인 'Caravan' 연주는 '플레처'와의 대결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플레처'의 악행에도 승리를 쟁취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플레처'가 '앤드류'를 더욱 자극하기 위해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플레처'는 일관적인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앤드류'의 갑작스러운 'Caravan' 연주는 '플레처'가 원하는 행동이었고, '플레처'가 기대했던 대로 '앤드류'가 성장한 셈이다. 이에 따르면 마지막 연주는 '플레처'와 '앤드류'의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해석 모두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만큼 '플레처'라는 캐릭터가 매력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연기한 'J.K. 시몬스'의 연기가 굉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자 하는 꿈에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친척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보통 사람’이 되어 오래 사는 것보다 ‘최고’로 짧게 사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앤드류’는 ‘플레처’와 대비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물로 볼 수 있다. ‘앤드류’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수많은 자기 학대를 행하기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을 위한 학대와 자기 파괴는 용인되어야 하는가?
작품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에게 질문을 한다. ‘플레처’의 방식으로 성공한 뮤지션이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자살했음을 보여주지만, ‘앤드류’와 ‘플레처’가 심한 갈등 끝에 굉장한 협연을 하는 결말부를 통해 ‘앤드류’의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상충된 두 의견 중 무엇이 옳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이러한 학대와 자기 파괴는 옳지 않다는 시선을 드러낸다. 이는 결말부, 이성을 잃은 것처럼 굉장한 연주를 하는 아들 ‘앤드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경악하는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플레처’ 교수의 교육 방식을 포함해, 꿈을 위한 학대와 자기 파괴에 부정적인 시선을 영화에 담았음을 알 수 있다.
<위플래쉬>는 드럼이라는 소재를 빌려 '꿈'과 이를 위한 수단의 허용 범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J.K. 시몬스'와 '마일즈 텔러'의 열연 속에 굉장한 사운드가 얹어진 압도적인 긴장감 속에 러닝 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후에도 여운이 굉장히 오래 남아 한참을 서성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은 화면으로 관람할 때도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지만, 극장에서는 웅장한 사운드로 만들어진 더 강렬한 긴장감을 통해 더 큰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다. 가능하면 극장 관람을 추천한다.
P.S. 감독이 작품 내의 자신의 시선을 명확히 보여주었음에도, 유난히 개봉 당시 국내에서는 '동기 부여'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기를 겪으면서 동시에 성공을 유난히 지향하던 사회여서 그랬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노오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현재에는 감독의 시선과 비슷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성공만이 행복의 유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사고가 사회에 자리 잡았다는 생각에 기쁘다가도, 노력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다.
*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J.K. 시몬스) 수상, 음향상, 편집상 수상. 작품상, 각색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