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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승부에 대한 태도로 이어진 사제 관계의 낭만

김형주 <승부(2025)> 리뷰

by 새시

현재는 예전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 하지만, ‘바둑’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여전히 굉장하다. AI 시대의 도입을 알린 ‘알파고’의 등장도 바둑과 함께하였다는 점은 바둑이 가진 문화적, 지적 영향력이 아직 상당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승부>는 한국 바둑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인 ‘조훈현(이병헌 분)’과 ‘이창호(유아인 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당대 세계 바둑의 최강자리를 주고받았던 그들이 사제 관계였다는 흥미로운 실화를 영화는 몰입감 있게 그려낸다. 동시에 작품은 바둑이 가진 디테일적인 특징을 활용하기보다는 바둑이 가진 근본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극을 이끌어가 바둑에 대한 이해 없이도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승부>는 ‘조훈현’과 ‘이창호’를 그대로 데려온 것만 같은 ‘이병헌’과 ‘유아인’의 굉장한 열연과 함께 바둑이 가진 매력을 활용하여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사제 관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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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을 몰라도 바둑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승부>는 기본적으로 바둑 영화다. 한중일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바둑은 현재 다소 마이너 한 취미로 인지도가 바뀌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본 작품을 관람할 때 다소 불안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바둑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나, <승부>는 바둑의 세밀한 규칙으로 이야기를 이끈 것이 아닌, 바둑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매력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바둑은 기본적으로 '전쟁'이다. 상대보다 많은 땅(집)을 먹어야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바둑의 전술은 전쟁의 전술과 유사하다. 누군가는 빠른 속공으로 속도전을 추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철저한 계산에 따른 수비적인 전략을 추구하기도 한다. <승부>는 이러한 전략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대신 '중계'의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가 관객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동시에, 한 턴씩 번갈아 진행한다는 바둑의 특징을 연출에 활용한 점도 인상적인데, 매 턴 집중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세밀히 담아내 긴장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둑판 아래에 카메라를 두어 인물들의 표정을 로우 앵글로 담고, 동시에 바둑판의 판세를 같이 보여주는 연출은 인물들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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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와 '승부'라는 단어가 만들어낸 관계성을 살린 낭만적인 서사.

<승부>에서 차용한 실화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한국 바둑의 전설들인 '조훈현'과 '이창호'가 깊은 사제 관계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무대에서 승부를 겨루는 사이였다는 실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러한 실화 내에 담긴 '사제'와 '승부'라는 단어가 가진 관계성에 주목한다.

'조훈현'과 '이창호'가 가진 사제 관계는 강력하다. 한 번도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고 언급되는 작중의 '조훈현'은 '이창호'의 가능성을 보고 그를 내제자로 들인다. 그는 제자에게 바둑의 모든 것을 가르치고자 한다. 여기에는 바둑을 대하는 태도와 승부를 대하는 태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당대 세계 최고의 기사이던 '조훈현'의 책임감은 엄청나다. 너무 엄하게 대하는 거 아니냐는 아내의 말에 '남의 집 아들을 아무렇게나 가르칠 수 없다'는 말과, 주변 기원에서 모든 기사들을 바둑으로 제압했다는 말을 듣고 '이창호'에게 '건방지다'라고 하는 모습, 그리고 제자가 자신만의 바둑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 말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사제 관계는 '이창호'가 '조훈현'의 가르침에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후 스승과의 첫 대국에서 승리함으로써 뒤집힌다. 언제나 스승이었던 '조훈현'이 자신의 제자에게 패배한 것이다. 그것도, '조훈현'의 기풍이 아닌 '이창호'만의 기풍에게 패배한 점을 '조훈현'에게 심적 방황을 안겨준다.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자신이 알려준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승을 꺾어버린 셈이다. 패배 직후에 그려진 화면을 뒤집어버리는 연출처럼 바둑 스승으로서의 '조훈현'의 삶은 뒤집어진다. 자신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 안 되어서 제자에게 패배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내내 '이창호'에게 패함으로써, '조훈현'은 방황한다. 스승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하나 그가 제자에게 가르친 것은 '바둑'만이 아닌 '승부'에 대한 태도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록 바둑의 기풍은 달랐지만 '승부에서는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 하는 것이 프로'라는 태도를 그대로 사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훈현'은 스승으로서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바둑을 다시금 연마한다. '승부'에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스승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승부>는 '승부'를 대하는 두 사제의 낭만 넘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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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만의 바둑을 둔다는 것.

영화의 두 주인공인 '조훈현'과 '이창호'의 기풍은 상반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초반부 세계 최강자인 '조훈현'은 공격적인 바둑을 통해 상대방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휘몰아친다. 그는 자신의 제자인 '이창호'를 가르칠 때도 이러한 기풍을 가르친다. 하나, '이창호'의 방향성은 다르다. 자신은 최대한 안전한 수를 두면서 상대가 원하는 수를 두도록 하지만, 철저한 계산을 통해 반 집 차이로 이기는 바둑을 지향한다. '조훈현'은 세계 최강이던 자신의 바둑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며 제자를 타박하지만, '이창호'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음을 스승에게 보여준다. 이후, '이창호'는 자신의 바둑을 통해 자신의 스승을 꺾는다. 애매한 모방보다는 자신의 확실한 방식이 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는 '조훈현'에게도 적용된다. '조훈현'을 꺾은 '이창호'의 바둑은 당대 최강이었지만, '조훈현'은 자신의 바둑을 더욱 갈고닦는 방식으로 수많은 도전 끝에 최고의 자리에서 자신의 제자를 다시 꺾는다. 이는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이창호'와 '조훈현'의 대결에서 볼 수 있다. '조훈현'은 해설 위원도 따라가지 못할 공격적인 수를 내내 내리치면서 '이창호'의 수비를 꺾어내려고 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이창호'에게 승리를 쟁취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걷는 것에 대한 찬사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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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과 ‘유아인’의 연기 대결로 주목을 받은 작품인 <승부>는 매력적인 실화를 흥미롭게 그려낸 인상적인 작품이다. 두 명배우의 열연이 아니어도 <승부>는 바둑이라는 소재의 매력을 살리면서 낭만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작품 외적인 문제로 인해 개봉은 늦어졌지만, 새옹지마로 극장 개봉을 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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