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고메스 <그랜드 투어(2024)> 리뷰
영화는 완전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영화의 모든 순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기 때문이다. 각본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이며, 화면은 의도적인 연출과 실제가 아닌 연기들로 가득하게 구성된다. 이러한 인위적인 요소들의 합으로 영화는 만들어진다.
하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러한 인위성을 의식하지 않는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실제와 비슷한 '영상'으로 만들어진 장르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는 관객들과 하나의 약속을 한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이 영화는 실제다'라는 약속이다. <그랜드 투어>는 다르다. 본 작품은 내내 '영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랜드 투어>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약혼자를 피해 온 아시아를 도망 다니는 한 남자와 그를 쫓는 약혼자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필연적으로 편견을 담는 예술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그랜드 투어'는 중세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를 돌아보며 새로운 견문을 쌓는 여행을 뜻한다. 191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본 작품에서는 견문의 대상이 아시아다. 작품은 당대 유럽인들이 아시아에 가지고 있던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편견’과 ‘윤회’, ‘해탈’ 등이 얽혀 기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또한 이야기를 지역의 현재 영상과 함께 내레이션으로 진행하는 점은 이러한 기묘함을 더욱 강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작품은 장면의 시간을 혼재하여 이야기를 그려낸다. 서양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던 시각으로 그려낸 1910년 대의 ‘극’ 부분과,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지역의 현재 일상 실제 모습을 촬영한 '실제 영상' 부분이 섞인 상태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인위성과 실제성이 혼재된 상태이다. ‘극’ 부분은 ‘오리엔탈리즘’이 가득하다. 동시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러한 편견 가득한 풍경 속에서 인위적인 이야기를 그려낸 화면은 당연하게도 인위적이다. 그에 반해, 단순한 ‘실제 영상’으로 가득한 부분은 편견이 덜 가미된 '실제' 모습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부분은 실제성을 가진다. 마치 영화의 모든 이야기가 세트장에서 촬영된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부는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를 통해서 작품은 '영화에는 편견이 필연적으로 담긴다'고 관객들에게 말한다.
<그랜드 투어>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약혼자에게서 7년째 도망가고 있는 ‘에드워드(곤칼로 와딩톤 분)’과 그를 쫓는 ‘몰리(크리스티나 알파이아테 분)’의 이야기이다. 도망자인 '에드워드'는 운명에 저항하는 수동적 존재이다. 그는 결혼이라는 운명을 거부한다. 그는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타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관계자들에게 꽃을 주고, 군함에 올라타 가는 길을 함께 하고, 승려들의 무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해 그들의 삶을 공유한다. 그의 행동은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렇게 그의 도망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 한 채 영원히 지속된다.
'몰리'는 추격자이다. 결혼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약혼자를 추격한다. 그 과정은 순응적이나 능동적이다. 자신의 사촌을 겁박해 약혼자의 위치를 알아내려 하고, 무리하게 여정을 강요해 인부들과 동행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에게 청혼하고 내내 도움을 주는 매력적이 남성의 구애도 내내 거절한다. 이렇게 능동적인 '몰리'는, 그럼에도 자신의 '결혼'이라는 믿음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약혼자를 만나지 못하고 극에서 퇴장한다.
그들의 기묘한 여행은 그들 모두에게 원하는 결말을 주지 못 하지만, 그들의 결말은 다르다. '에드워드'는 극에서 퇴장하지 못 한 채 여행을 지속한다. '몰리'의 시선에서 본 2부 후반부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들의 죄목이 '외국인을 약탈하고 살해함'이라는 것을 볼 때 '에드워드'는 강도 당시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극에서 퇴장하지 못하고 살아서 여행을 지속한다. 그에 반해 '몰리'는 여행 중 지병으로 사망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의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 속에서, 다시금 일어나 극에서 직접 퇴장한다. 마치 불교의 윤회와 해탈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이러한 부분에서 작품은 영화 속 세상이 ‘연출’ 임을 관객에게 일깨워준다.
<그랜드 투어>는 영화는 인위성과 편견이 필연적으로 들어 있는 영상임을 말하는 기묘한 작품이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려낸 부분이 인상적인데, 그만큼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이 가진 기묘한 분위기가 좋았지만, 작품이 가진 난해함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쉽게도 느꼈던 작품이다.
* 제77회 칸 영화제 감독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