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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신으로서 추락하고 인간으로서 다시 일어서는

제임스 건 <슈퍼맨(2025)> 리뷰

by 새시

0. 한 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대항마라 꼽혔던 ‘DC 확장유니버스(이하 DCEU)’는 지속된 부진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슈퍼맨’, ‘배트맨’ 등 엄청난 IP로 구성된 DC코믹스가 세계관 구축을 포기하는 것은 굉장히 아쉬운 일이기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감독인 ‘제임스 건’ 감독을 총괄 제작자로 해서 세계관 리부트를 단행했다. 그렇게 영화 쪽에서 첫 스타트를 끊은 <슈퍼맨>은 앞으로의 'DC 유니버스' 세계관에 기대를 갖게 하면서도, ‘제임스 건’ 감독의 느낌이 강하게 담긴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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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퍼맨>의 첫 장면은 새하얀 눈 밖에 없는 남극의 어느 곳으로 ‘슈퍼맨’이 추락하는 장면이다. 티 없이 맑은 남극에서 추락하는 ‘슈퍼맨’의 모습은 신이 추락하는 것처럼 성스럽게도 느껴지는 이 장면은 일종의 ‘신의 추락’을 그려낸 장면이다. 작품은 이에 맞춰 초반부 ‘슈퍼맨’을 ‘인간이 되어가는 신’으로 묘사한다. 이전의 ‘슈퍼맨’은 마치 ‘자연’과도 같았다.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의심하지 않고, ‘약자들을 지켜라’라는 친부모의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떨어져 하늘의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던 그는, 패배한 적이 없기에 스스로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기에 그의 모습은 ‘자연’의 그것이 담긴 신에 가까웠다.


2. 하지만, 추락 이후 그의 모습은 다르다. 압도적인 강함이라는 신의 특징을 잃었고, 그의 행동을 규정하는 ‘하늘의 말씀’인 친부모의 메시지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친부모의 유언에 따라 ‘보호’라는 가치에 맞춰 행동했던 그는 유언이 담고 있는 가치가 실제로는 ‘지배’였다는 점에 혼란을 겪는다. 이후 그는 무수한 고뇌에 빠진다. 이후 그의 모습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자신이 인간들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강아지 ‘크립토’를 ‘렉스 루터(니콜라스 홀트 분)’가 데려갔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다움'이 그를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한다.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는 그를 여전히 아이처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고뇌 끝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지배’를 위한 ‘신’으로 지구로 떨어졌지만, 자신의 쓰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가 신으로서 추락하는 장면은 티 없이 맑고 하얀 남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가 승리하여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대비를 잘 보여준다. 또한, 빌런 ‘렉스 루터’을 통해 ‘인간다움’은 선천적인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준 부분도 이러한 대비를 더욱 강하게 느끼도록 한다. 그렇게 <슈퍼맨>은 인간으로 다시 일어난 추락한 신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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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슈퍼맨’의 강함을 묘사하는 방식이 타 영화와 다른 점도 인상적이다. 본 작은 이전 ‘슈퍼맨’을 다룬 작품들과 다르게 사망자가 없음을 강조했다. 전투에서 가장 큰 사상자가 나오는 상황은 두 주체가 힘이 비슷할 때이다. 사망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그만큼 ‘슈퍼맨’이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슈퍼맨’과 같은 초능력자인 ‘메타 휴먼’ 집단인 ‘저스티스 갱’이 도심에서 벌이는 전투에서 잘 느낄 수 있는데, 괴수를 살려서 데려가고 싶은 ‘슈퍼맨’과 다르게 ‘저스티스 갱’을 다소 지저분한 전투 끝에 괴수를 사살한다. 그만큼 작품은 이렇게 ‘슈퍼맨’과 여타 ‘메타 휴먼’ 간의 힘의 격차가 클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슈퍼맨’의 책임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4. <슈퍼맨>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감독한 ‘제임스 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답게 그의 색깔이 많이 드러난다. 이러한 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은 ‘분위기’인데, 극이 진행되는 내내 농담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 DCEU에서 느껴지는 진중한 분위기를 선호했던 이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이를 통해 너무 무겁게 그려지지 않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미스터 테리픽(마이클 홀트 분)’이 ‘렉스코프 기지’에서 직원들을 상대할 때 구체를 활용해 그들을 처리하는 장면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욘두’가 화살을 사용해 적들을 척살하는 장면과 유사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그러면서도, ‘화살’이 아닌 ‘구체’를 활용해 불살을 표현한 부분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일치해 기억에 남았다.


5. 이러한 분위기에 이바지하는 또 다른 요소들은 ‘완벽하지 않은’ 히어로들의 존재이다. 주인공이자 가장 완벽한 존재여야 하는 ‘슈퍼맨’을 제외하고 다른 영웅들은 각자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린 랜턴(네이선 필리선 분)’은 본질은 선하지만 ‘저스티스 갱’이라는 명칭에 집착하는 등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미스터 테리픽’ 은 똑똑하고 진중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어딘가 나사 빠진 모습들을 보인다. 심지어 완벽한 주인공 '슈퍼맨'도 작중에서 고뇌에 빠져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의 전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도 완벽하지 않은 영웅들을 활용해 멋진 작품을 그려낸 점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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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슈퍼맨>은 ‘슈퍼맨’을 통해 ‘신의 추락’과 ‘인간의 비상’을 동시에 보여주면서도 내내 밝은 톤으로 그려낸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는 새로운 DC유니버스의 첫 작품으로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전 세계관인 DCEU의 작품들과는 확실히 다른 톤을 보여주지만 작품이 갖고 있는 다양한 매력 덕분에 이후 작품들도 상당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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