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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스틸 히어>, 존재했음을 기억하려는 발버둥

바우테르 살리스 <아임 스틸 히어(2024)> 리뷰

by 새시

0. 가까운 이의 실종은 남겨진 이들에게 정말 잔인하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는지, 이미 떠났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예는 마음을 앗아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삶은 이어지기에 버티면서 나아가야 한다. <아임 스틸 히어>는 소중한 이의 실종으로 인해 남겨진 이들이 쌓아 올린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남겨진 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기록과 기억이다. ‘루벤스 파이바(셀톤 멜루 분)’가 갑자기 사라진 이후, 그의 존재는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과 아내 ‘유니스 파이바(페르난다 토히스 분)’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유니스’는 최소한 그의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유니스’는 국가의 공식적인 사망진단서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이렇게 사라진 ‘루벤스’의 흔적은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서려있다. 후반부 ‘유니스’가 셋째 딸인 ‘바이바’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초반부 자식들을 보며 아내에게 ‘나중에는 우리만 남겨지겠지’라고 말하던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2. ‘유니스’가 ‘루벤스’를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그가 실재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다. 해변에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유니스’의 모습은 기록과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와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남편이 실재했음을 되새기려는 노력이 담긴 장면이다. 그렇기에 말년에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어 많은 기억들을 잊은 ‘유니스’가, 자신의 남편이 등장하는 뉴스를 보고 반응하는 장면은 남편과 그와 함께한 순간, 그리고 그를 기억하려고 노력한 순간들이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겨졌다는 가슴 먹먹한 장면이다.


3. ‘유니스’가 남편 ‘루벤스’의 존재를 찾는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은 성장한다. 성장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음을 인식할 때 시작된다. 막내인 ‘마르셀루(길례르메 시우베리아 분)’는 아끼던 강아지를 자동차 사고로 잃으며 ‘죽음’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넷째인 ‘마리아’는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집과 이별하면서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마음으로 깨닫는다. 그들의 유년기는 그렇게 지나간다.


4. 아버지가 없다고 아이들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삶은 계속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행복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이 행복하면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군부가 ‘루벤스’를 납치하였다는 실상을 고발하려는 언론사에서 ‘파이바’ 가족의 사진을 찍을 때, 그들이 웃는 것에 당황하는 기자들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웃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기자에게, 더욱 크게 웃으라고 말하는 ‘유니스’의 모습은 남겨진 이들의 불행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부분이다.


5. 물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겪었던 불행이 단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후반부 ‘유니스’와 가족들이 ‘루벤스’의 국가가 공인한 사망증명서를 받고 기뻐하는 장면이다. 이는 그의 실종이 그의 죽음보다도 더 큰 상처를 가족들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듯 작품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그려낸다. ‘유니스’의 의연함 속에 숨어있는 고통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대표적인데, 그중에서도 둘째 ‘엘리아나(루이자 코소브스키 분)’에게 윽박지르다 손찌검을 하는 장면과 키우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들을 감시하던 비밀경찰을 윽박질러 도망치게 하는 부분에서 이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유니스’가 보여주는 고통은 평소에 보여주는 그의 의연함에 비례하여 강렬하게 다가오는데, 이와 동시에 의연함 속에서 새어나오는 고통을 세밀하게 표현한 배우 ‘페르난다 토히스’의 연기가 굉장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6. 우리나라에서 군부 독재가 종식된 것처럼, 브라질에서도 군부 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암흑의 시대 동안 희생되어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는 이들과 그들의 소중한 이들이 겪었던 고통은 실존한다. 극 후반부 ‘유니스’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아임 스틸 히어>는 기억과 흔적들을 통해 소중한 이들이 존재했음을 기억하려는 남겨진 이들의 처절한 노력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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