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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외적 인식을 침범하는 내적 믿음

연상호 <얼굴(2025)> 리뷰

by 새시

0. 우리는 외모를 단순히 보이는 그대로 평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외모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외모에 대한 평가는 내적 믿음과 무관할 수 없다. 영화 <얼굴>은 외적 인식의 대표적인 소재인 ‘얼굴’을 통하여 이러한 논제를 다룬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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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굴>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특은 ‘이질감’이다. ‘영규(권해효 분)’을 인터뷰하는 첫 장면, 프로듀서 ‘수진(한지 분)’의 무례한듯 아닌듯한 질문이 이러한 분위기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 ‘영규’의 아내인 ‘영희’의 장례식에서의 장면이 이러한 분위기를 확고하게 하는데, ‘영희’의 자매들이 그를 ‘못생겼다’고 표현하며 아버지의 불륜을 폭로한 ‘영희’를 ‘이상한 애’로 매도하는 장면에서 ‘이질감’은 점점 강해진다. 이러한 이질감은 영화 내내 이어지는데, 장례식에서 나온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보고하는 ‘수진’의 모습과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희’를 ‘똥걸레’라 스스럼 없이 표현하며 비하하는 옛 동료들 등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2. 작품은 이러한 이질감을 바탕으로 작품 속 세계가 품고 있는 모순 가득한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낸다. ‘영희’의 자매들은 아버지의 불륜을 폭로한 어린 ‘영희’를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애’로 치부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영희’가 근무했던 ‘청풍공장’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공장 사람들을 비롯해 주변인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던 공장 사장 ‘주상(임성재 분)’은 공장 미싱사인 ‘진숙’을 성폭행한다. 하나, 공장을 떠나게 되는 것은 ‘주상’이 아니라 ‘진숙’이다. 성폭행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더욱 궁금해하는 세상에서, 권위와 힘을 가지고 있는 ‘주상’의 잘못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러한 모순적인 세계를 '이질감'을 통해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동시에 ‘영희’라는 작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이 겪을 법한 의구심과 고뇌를 관객한테도 경험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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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얼굴’에 대한 시선은 극중 인물들이 가진 믿음의 투영이다. 실제로 엔딩 장면에 등장한 ‘영희’의 얼굴이 극 중 언급된 것만큼 못생기게 보이지 않음에도 ‘영희’의 자매들, ‘영희’의 공장 동료들 등 주변인들은 하나 같이 ‘영희’를 ‘못생겼다’고 말한다. 유일하게 ‘영희’를 ‘못생겼다’고 직접적으로 칭하지 않는 이는 공장의 사장인 ‘주상’이다. 그는 ‘영희’의 사진을 찍을 때도, 머리를 정리하라고만 할 뿐 못생겼다고 칭하지 않는다. 이는 권위로 만들어진 믿음과 그에 대한 투영이 외적 인식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주상’을 제외한 이들은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영희’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판단에 따라 그의 외적 가치를 판단하지만, 사회적 판단을 규정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권위를 가진 ‘주상’은 이러한 믿음에 무관한 채로 ‘영희’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권위를 잃은 늙은 시기에는 ‘영희’를 못생겼다고 표현하는 것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 ‘동환(박정민 분)’이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진실을 은폐하고 다큐멘터리를 진행하자고 ‘수진’에게 이야기할 때, '동환'에게서 '영규'의 추악한 내면을 느낀 ‘수진’이 ‘동환’에게 아버지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 점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4. 이렇듯 작품은 ‘얼굴’을 통해 ‘미’에 대한 기준이 임의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영규’는 도장 명인으로 칭송 받을 정도의 예술가임에도 아름다움의 기준을 권위에 의탁한다. 주변인들이 ‘영희’가 아름답다고 하여 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덥석 결혼해버리지만, 주변인들이 실제로는 ‘영희’를 못생겼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이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강하게 느낄 정도로 절망한다. 아름다운 것은 칭송받고, 추한 것은 비난받는다는 그의 말에는 그가 ‘미’에 대한 기준 없이 권위에 이를 위탁했음을 의미한다. ‘주상’의 경우도 비슷하다. ‘주상’은 ‘영규’와 다르게 자신만의 ‘미’의 기준이 있지만, 강압적으로 여성의 몸을 찍어 인화해 전시하는 것을 ‘미’로 칭한다. 그의 행동이 굉장히 비도덕적인 점은 차치하고, 이러한 ‘미’의 기준은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5. 작품의 각본은 이러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각본은 관객이 가지는 ‘영희’에 대한 이미지와 그의 죽음에 대한 추측이 계속 변화하도록 이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영희’는 아버지의 불륜을 폭로했으나, 모순 가득한 사회 속에서 큰 꾸짖음을 받고 집을 나간 못생긴 소녀로 그려지며,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우둔하고 덜떨어진 ‘똥걸레’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하나, 세 번째 인터뷰에서는 불의를 참지 못 하는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지면서 동시에 그가 다니던 공장의 사장 ‘주상’이 그를 살해한 범인으로 암시되고, 네 번째 인터뷰에서는 ‘영희’를 살해한 범인이 다름아닌 남편 ‘영규’라는 사실과 함께 살해 동기는 ‘주상’에 대한 무서움이라고 암시한다. 그러나, 그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영규’와의 인터뷰에서, ‘영희’를 살해한 범인은 ‘영규’지만 그 동기에 대한 진실이 여태까지의 추측과 다르다고 언급된다. ‘영규’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이유는 '주상'에 대한 무서움이 아닌, 열등감으로 인해 생긴 ‘피해 의식’이다. 이렇듯 작품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각본을 비틀어 관객들이 몰입을 유도하면서 주제 의식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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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초저예산으로 촬영된 본 작품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내내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연상호’ 감독의 야심까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느껴지는 이질감은 작품이 그려낸 모순적인 세계에 대한 강한 반감마저 느껴지도록 하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모순적인 사회 속 올바른 생각을 하는 이가 느끼는 고통과 절망감 역시 느끼도록 한다. 이러한 이질감 가득한 세계를 통해, <얼굴>은 내적 믿음이 외적 인식을 침범할 수 있음을 강렬하게 그려낸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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