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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자연과 인간 간의 균형을 이야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모노노케 히메(1997)> 리뷰

by 새시

0. 갑자기 재앙신이 마을을 습격한다. 마을의 차기 지도자 ‘아시타카(마츠다 요지 분)’은 재앙신을 죽이지 않고 막으려 하나,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재앙신을 죽이고 저주를 받는다. 저주로 인해 죽어갈 운명에 처한 ‘아시타카’는 마을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마을을 떠나게 되고, 재앙신의 몸에 박혀 있던 납덩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서쪽 나라로 떠난다. <모노노케 히메>는 이러한 ‘아시타카’의 여정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균형에 관해 말하는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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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노노케 히메>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도식은 ‘타타라 마을’과 ‘사슴신의 숲’의 대비이다. ‘타타라 마을’은 자연을 파괴하는 세력이다. 그들은 철광석을 얻고 이를 제련하기 위해 자연을 뒤엎고, 그곳의 신까지 해한다. 하나, 그들의 행동이 이기심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타타라 마을’은 리더인 ‘에보시 고젠(다나카 유코 분)’가 매춘부와 나병 환자로 대표되는 천대받는 이들을 데려와 세운 마을이다. 기존의 사회 구조에서 영원히 천대받을 운명이었던 그들은 ‘타타라 마을’에서 그들의 운명을 바꿀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세워진 ‘타타라 마을’은 꽤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차별받는 것이 당연시되던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마을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구현되지 않은 남녀평등이 구현된 ‘타타라 마을’의 원동력은 제철이다. 이를 위한 사철을 캐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연 파괴는, 그들에게는 운명 개척인 것이다. ‘타타라 마을’은 앞으로 나아가는 문명의 진보성을 상징한다. 동시에 살리기도, 파괴하기도 하는 그들은 그렇게 모두에게 공평하게 삶과 죽음을 선사하는 자연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그렇게 그들은 자연의 일부로 기능한다.


2. ‘사슴신의 숲’은 ‘타타라 마을’과 대척점에 있는 장소이다. 숲은 변화 없이 유지되는 자연을 상징한다. 숲은 신비롭다. 다양하고 많은 생명들이 공존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이러한 영원성의 기반에는 순환이 있다. 생명을 관장하는 ‘사슴신’은 삶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가져가기도 한다. 이러한 순환은 자연의 기본 원리이다. 삶은 누군가의 희생을 근간으로 한다. 늑대는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어야 하고, 희생되는 동물들은 또 다른 작은 동물들이나 식물들을 잡아먹어야 한다. 숲이 그려내는 영원 속에는 수많은 삶과 죽음이 있는 것이다. 이는 절묘한 균형으로 유지된다. 하나, 인간의 개입은 이러한 균형을 무너트린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에 필요한 것 이상을 파괴한다. 균형이 무너진 숲은 서서히 소멸하고, 이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지며 이 역시 수많은 죽음을 만든다. ‘사슴신의 숲’은 자연의 영원성을 상징하면서도, 자연의 일부인만큼 수많은 삶과 더 많은 죽음을 안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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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인공 ‘아시타카’는 이러한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존재이다. ‘아시타카’는 항상 옳은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시하는 완벽하고 고결한 존재이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재앙신을 죽이고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아 마을에서 쫓겨나지만, 그에게는 원망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모습에 걸맞게 그는 내내 ‘타타라 마을’과 ‘사슴신의 숲’ 간의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 ‘타타라 마을’에서 왜 그들이 자연을 파괴하는지를 몸소 겪어보기도 하고, ‘사슴신의 숲’에서 이러한 파괴가 얼마나 숲과 그 생물들을 무너뜨리고 있는지도 직접 목격한다. 죽음이 예정된 삶임에도 그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하나, 그러한 그도 자연의 일부이다. ‘아시타카’ 역시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기도 하며, 반대로 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두를 살리고자 하지만 그럴 수 없으며, 때론 목숨을 거두는 그 앞에서 삶과 죽음은 임의성을 띤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과 죽음이 반복되듯, ‘아시타카’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4. ‘사슴신’은 대자연으로서 모두를 품는 존재이다. 멧돼지 신 ‘옷코토누시’의 말처럼 그는 ‘자연’의 편도, ‘인간’의 편도 들지 않는 신적인 존재이다. 그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다툼에 관여하지 않지만, 균형이 무너지자 모든 것을 파괴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하나, 자연을 무너뜨린 인간이 균형을 맞추려는 약간의 노력만 하여도 다시금 생명을 주는 자애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5. 작품은 이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균형이 중요함을 말하지만, 교조적인 어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타타라 마을’은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지만 따뜻하고 진보적인 인간성을 품고 있는 장소이며, ‘사슴신의 숲’은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장소지만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흐름에 퇴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식을 통해 작품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어조로 이야기를 관객 앞에 내려놓는다.


6. 균형이 무너진 이후, 자연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간 뒤 남는 것은 마음이다. ‘타타라 마을’의 남은 이들은 마을의 모든 것이었던 제철소가 무너진 이후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보았고, 이러한 경험으로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얻은 것이다. 동시에,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사슴신의’이 삶도 가져다준다는 것을 목격한 그들은 균형의 중요성도 체감하였다. 그들과 대척하던 ‘산(이시다 유리코 분)’도 최소한 ‘아시타카’한테는 사랑의 형태로 마음을 열었고, 마을과의 교류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언젠가 다시 무너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마음은 모두를 다시금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는 세상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굉장히 희망적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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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를 모두의 입장에서 풀어내며, 이를 통해 균형의 중요성을 말하는 명작이다. 작품은 이러한 이야기를 교조적으로 말하지 않고, 단지 이야기를 관객 앞에 내려놓으며 생각하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그려내며 동시에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분임을 깨닫도록 한다. 잔혹하면서도 희망적인 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는 동시에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세상은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작품은 결말부에서 이에 대해 희망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그러한 대답이 옳을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본 작품이 세상을 조금 더 선한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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