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쩔수가없다>, 정말 어쩔 수가 없는가

박찬욱 <어쩔수가없다(2025)> 리뷰

by 새시

0.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만수(이병헌 분)’는 직장에서 장어를 선물로 받아 가족들과 함께 구워 먹는다. 화목한 가정과, 자신을 인정해 주는 직장, 자신이 항상 꿈꾸었던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만수’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며 가을을 기다린다. 하지만 가을보다 먼저 온 것은 해고 통보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자신의 이상적인 삶을 누리며 살아가던 ‘만수’가 그 이상 위에 벌어진 ‘해고’라는 균열을 메우기 위해 재취업을 시도하고, 이를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정말 어쩔 수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어쩔수가없다>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이야기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집착’이다. 작품의 첫 장면은 ‘만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을 누리는 부분으로 시작된다. 직장에서 준 장어를 가족들과 구워 먹으며, 직장과 가족의 인정을 느끼며 그는 자신의 이상적인 삶이 이곳에 있다고 말하며 행복해한다. 이러한 ‘만수’의 이상적인 삶은 인정받는 ‘제지업’ 기술자로서의 모습과, 사랑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의 모습으로 대표되는 화목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대표된다. 다만, 이러한 ‘이상적인 삶’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만수’가 타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온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 아들이 자신을 분재로 여기는 꿈을 꾸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이야기는 이러한 ‘만수’의 ‘이상적인 삶’에 균열이 가해지며 시작된다.


2. 이러한 균열은 ‘만수’의 실직에서 시작된다. 과거 수상한 ‘올해의 펄프맨’ 상패를 집에 전시해 두고, 두고두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제지업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트에서 일하는 모습이 등장하듯 ‘만수’는 실직 후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제지업 기술자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인해 제지업이 아닌 다른 일에 지속적으로 몸을 담는 것을 거부한다.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은 점점 강해진다. 이는 가족들이 여태껏 누렸던 것들을 희생하는 등의 압박으로 이어진다. 압박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만수’는 다른 일을 하는 대신 제지업의 선도 주자인 ‘문 제지’로의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3. ‘만수’의 살해 목표인 세 명은 모두 이상적인 삶이 무너진 ‘만수’의 가능성이자 불안이다. 첫 번째 희생자인 ‘구범모(이성민 분)’는 ‘만수’와 비슷하게, 실직 이후에도 제지업 이외의 일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만수’와 마찬가지로 제지업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범모’는 실직 이후 알코올에 절어 살던 중 ‘만수’가 경쟁자들을 확인하려고 올린 가짜 구인 공고를 보고 다시금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편에게 소외되는 아내 ‘이아라(염혜란 분)’은 종이는 잊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며 사랑을 갈구하지만, ‘범모’의 눈에는 종이만 보일 뿐이다. 이로 인해 ‘아라’는 젊은 남자와 불륜 관계를 맺게 되고, 이를 목격하는 ‘범모’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러한 ‘범모’의 모습은, 실직 이후 알코올에 절어 살고, 가족에게까지 버림받는 무의미한 삶으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목격한 ‘만수’가 느끼는 불안감은 직후 아내 ‘이미리(손예진 분)’에게 매달리는 모습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만수’는 자신과 비슷한 ‘찌질함’을 보여주는 ‘범모’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를 살해하는 것을 끝까지 주저한다. 심지어, ‘만수’는 ‘범모’를 죽이지도 못한다. ‘만수’와 ‘범모’, ‘아라’가 얽힌, ‘조용필’의 노래 ‘고추잠자리’가 흘러나오는 몸다툼 장면에서 ‘범모’는 그에 대한 불만이 쌓인 ‘아라’의 우발적인 격발로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만수’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의 시신이 ‘범모’의 집 마당에 묻혔다는 점은 ‘무의미한 삶’이라는 불안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종류라는 것을 보여준다.


4. 두 번째 희생자인 ‘고시조(차승원 분)’는 제지업에 대한 애정은 있음에도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인물이다. 이는 ‘만수’에게, 제지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만수’는 이전에 ‘범모’가 언급한 것처럼, 제지업을 ‘어쩔 수가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시조'는 '만수'처럼 부양해야 할 딸의 존재가 있다. '만수'와 비슷한 처지에 있음에도,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시조’의 존재는 ‘만수’의 또 다른 불안으로 기능한다. 구두 가게에서 진행되는 ‘시조’와 ‘만수’ 간의 대화는 '시조'에 대한 '만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작품은 ‘만수’의 위치를 안과 밖의 경계인 출입문 위로 설정하여 동질감과 불안을 동시에 그려낸다. 동시에, 문이 열릴 때 나오는 효과음을 반복적으로 삽입하여 이로 인한 혼란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범모’를 죽이는 데에는 크게 망설이던 ‘만수’가 ‘시조’를 죽이는 데에는 비교적 망설임이 적었다는 점은 제지업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잃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 더욱 컸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시조’의 시신을 본인의 집에 매장했다는 점을 보여주며 이러한 가능성을 자의로 제거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5. 마지막 희생자인 ‘최선출(박희순 분)’은 등장인물 중 ‘제지업’에서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만수’가 행했던 모든 행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출’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하나, ‘선출’과의 술자리에서 그가 제지업에서 겪는 고충에 공감하게 되고, 동시에 가족에게서 버림받아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동질감을 느껴 그를 죽이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선출’은 ‘만수’가 제지업에 계속 종사한다 함에도 가족에게 버림받고 외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인 것이다. 하나, 그 과정에서 그에게 고통을 주는, 양심의 역할로 기능하는 충치를 직접 뽑아버려 죄책감을 내려놓고, 동시에 자신의 범죄 행위를 발견하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는 불안을 내려놓는다. ‘만수’는 이전과는 다르게 ‘선출’을 계획적이고 주체적으로 살해하는 장면은 망설임이 없어진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선출’의 시신이 그의 자택에 방치된 것도, ‘만수’가 그러한 불안과 망설임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6. 이렇게 ‘만수’는 불안의 가능성을 모두 제거해 ‘이상적인 삶’을 봉합한다. 하지만, 불안과 직면하는 대신 ‘어쩔 수가 없다’며 불안을 제거해 버려 봉합한 이상은 위태롭다. 마당에는 ‘시조’의 시신이라는 불안이 여전히 묻혀 있고, 반려견들은 이를 눈치채고 죄악이 담긴 나무 밑을 맴돈다. 낯선 이들에게만 연주를 들려주는 딸은 사건이 모두 끝나고 범죄에 얽힌 가족들에게도 연주를 들려준다. 결정적으로, 나무들이 벌목되는 과정으로 구성된 엔딩 장면은 마지막 '만수'의 면접 장면에서 언급된 기술 발전과 인원 감축과 연계되어 봉합된 이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이렇게 작품은 '어쩔 수가 없다'라고 외치며 불안과 마주하지 않고 가능성을 소거한 ‘만수’의 행동이 과연 옳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7. 동시에, <어쩔수가없다>는 마지막 ‘벌목’ 장면을 통해 ‘어쩔 수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도 던진다. ‘만수’가 ‘재취업’이라는 목적을 이루려면 ‘어쩔 수가 없다’라는 믿음으로 경쟁자들을 살해한 것과 같이, ‘종이 생산’의 목적이 있다는 이유로 ‘벌목’에 대해 ‘어쩔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비단 '벌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쩔 수가 없다'는 체념 섞인 믿음 속에는 불안이 숨어 있으며, 그러한 불안을 마주해야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라는 질문일 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