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자키 하루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2025)> 리뷰
0. 일본 애니메이션은 소위 ‘오타쿠’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대가 있었다. 하나, 어느 순간 경계가 다소 무너지더니, 한 시리즈의 극장판이 500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의 메인 스트림으로 등극했다. 본 작품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그 대상이다. 본 작품은 기존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으로서 팬들에 대한 ‘선물’ 정도의 작품일 것이라는 기대를 넘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상당한 만족감을 제공하며 메인 스트림으로 들어오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내는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시각적 측면이다. 작품의 주 배경인 ‘무한성’이 대표적인데, 말 그대로 ‘무한’한 공간이 시시각각 변하며 주는 몰입감이 굉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내 반복되는 굉장한 수준의 액션 장면도 돋보이는데, 작중 액션의 주 소재인 ‘호흡’을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하여 이러한 액션 장면을 더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점들이 종합되어 마치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는 것 같은 현란한 속도감이 영화를 내내 감싼다.
2. 시각적 측면 외에도, 작품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방식이 ‘회상’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크게 3개의 전투로 구성되어 있고, 7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6명의 회상이 등장한다. 이는 <귀멸의 칼날> 시리즈가 가진 캐릭터들의 매력이 굉장하다는 이유에서 기인하는데, ‘최종국면’이라는 한정된 이벤트 내에 이러한 캐릭터들의 서사를 모두 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본 작품은 시리즈물의 호흡을 억지로 영화의 호흡으로 바꾼 느낌을 보여준다.
3. 앞에서 언급하였듯, 본 작품의 서사는 3개의 전투로 크게 나뉜다. 두 개의 비교적 비중이 적은 전투가 먼저 전반부를 장식하고, 이어서 일종의 메인이벤트인 ‘기유/탄지로 vs. 아카자(이하 아카자전)’이 위치하는 구조이다. 앞 선 두 개의 전투는, 그 자체로 서사적 완결성을 띠는 동시에 뒤에 이어지는 ‘아카자전’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첫 번째 전투인 ‘젠이츠 vs. 카이가쿠’와 두 번째 전투인 ‘시노부 vs. 도우마’는 혼재되어 진행된다. 두 전투 모두 서로 맞붙는 이들은 악연을 가진 이들이다. ‘젠이츠’와 ‘카이가쿠’는 같은 스승을 둔 사형 관계이다. 지속된 무시에도 ‘카이가쿠’를 존경하는 ‘젠이츠’는, ‘카이가쿠’의 배신으로 인해 스승을 잃게 된 이후에도 마음속에는 사형으로서의 애정이 남아 있어 쉽게 베지 못 했으나, 끝까지 죄의식 없이 스승과 자신에 대한 반감만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 잡고 자신만의 형(形)으로 사형을 벤다. 이에 반해, ‘시노부’는 자신의 언니를 죽인 ‘도우마’에게 패배한다. ‘시노부’는 죽음 직전의 고통에 몰린 상황에서 언니의 환영을 만나고, 이를 통해 마음을 다 잡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일격을 ‘도우마’에게 날리지만 결국 패배하고 흡수당한다. 이후 ‘카나오’가 등장하며 추가적인 서사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지만 본 작품에서는 ‘시노부’의 사망으로 본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종료된다. 작품은 이러한 두 전투를 통해 승리는 어렵게 묘사하고, 패배는 압도적으로 묘사하여 메인이벤트인 ‘아카자전’이 힘들 것임을 암시한다.
4. 본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아카자전’은 이러한 기대에 걸맞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강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아카자’는 굉장한 실력(‘주’ 급)을 가졌다고 묘사되는 ‘기유’와 ‘탄지로’를 혼자서 압도한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전투 장면들과 함께, 작품은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기유’는 유일하게 자신의 회상 장면을 부여받지 않은 인물이다. 하나, 처절한 전투 속에서 ‘강함’을 상징하는 ‘반점’을 얻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탄지로’를 구하고 ‘아카자’를 멸하려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에게 존재를 각인한다. 주인공인 ‘탄지로’도 이러한 사선에서 과거 아버지가 알려준 비기를 떠올리며 결국 ‘아카자’를 베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서사를 통해 작품은 선역인 ‘귀살대’ 측 캐릭터들의 매력을 묵직하게 드러낸다.
5. 이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은 악역인 ‘아카자’이다. ‘기유’와 ‘탄지로’를 2대 1의 전투에서도 압도하던 그는, 맨손 격투를 기반으로 굉장한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또한, 가장 많은 분량이 할당된 그의 회상 장면은 굉장한 감동을 주는 장면이다. ‘지키는’ 삶을 살아가던 존재가 자신이 지키던 것들을 잃었을 때의 굉장한 절망감과 분노를 인상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며, 또한 그 과정에서 ‘강함’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약한 이들을 혐오하는 그의 성격이 약자인 비참한 삶 속에서 겨우 얻은 소중한 이들을 또 다른 약자들의 비열한 술수로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기유’와 ‘탄지로’에 비해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그가 그들과의 전투 속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지키던 이들을 떠올려 ‘강함’을 추구했던 본래 이유와 잘못된 길을 택함에 따른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자신을 구원했던 ‘코유키’에게 안겨 다시금 구원받으며 스스로 멸하는 길을 택하는 장면은 일종의 구원 서사로서 굉장한 감동을 준다.
6.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원작 시리즈 팬들에 대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작품이다. 동시에, 원작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굉장한 볼거리와 매력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상당한 재미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시리즈물의 호흡을 영화의 호흡으로 억지로 바꾼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매력을 통해 후속작이 굉장히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