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영원히 이어져야 할 혁명

폴 토마스 앤더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 리뷰

by 새시

0. 혁명의 시작은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불의에 항거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나 많은 혁명들은 본질을 잊고 그저 혁명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혁명의 시작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였겠지만, 어느 순간 혁명 그 자체 혹은 이념에 사로잡혀 관성에 젖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은 때로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혁명은 무의미한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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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캘리포니아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이민자들을 구하기 위한 반정부 단체 ‘프렌치 75’의 작전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자유’라는 혁명의 가치를 통해 세상을 더욱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행동을 시작한다.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그들은 이러한 성공을 만끽한다. 작품은 이러한 작전의 분위기를 비장하고 긴장감 있게 연출한다. 동시에, ‘자유’를 추구하는 그들의 희망 담긴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넘실대는 욕망과 어리숙함을 통해 왜인지 모를 불안 역시 담아낸다. 이는 삽입된 스코어에서 잘 드러나는데, 비장하면서도 희망적인 멜로디 위에 불안함을 자아내는 음이 내내 섞여 있는 점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2. 이러한 불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시작한 혁명은 결국 관성적으로 변한다. 앞선 작전에서 연인의 인연을 맺은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 분)’와 ‘팻(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은 아이를 갖게 되나, ‘혁명’을 인생의 후순위로 놓을 수 없던 ‘퍼피디아’는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일선으로 나선다. ‘혁명’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가면서 혁명의 방식은 ‘테러’에 가까워지고, 결국 은행에서의 작전 중 ‘퍼피디아’가 경비원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발생한 혼란으로 인해 체포된 ‘퍼피디아’는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조직원들을 배신하고, 이로 인해 ‘프렌치 75’는 궤멸 직전에 놓인다. ‘팻’과 그의 딸을 비롯해 살아남은 이들은 정체를 숨기고 숨어 사는 길을 택한다. 본질을 잊고 ‘혁명’ 그 자체에 관성적으로 몰입했던 '프렌치 75'는 그렇게 몰락한다.

3. 이들의 대척점에 놓인, 그리고 그들을 몰락으로 이끈 이는 ‘록조(숀 펜 분)’라는 군인이다. 그는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프렌치 75’의 첫 작전에서 이민자를 수용하던 부대의 지휘관을 맡고 있던 그는, ‘퍼피디아’에게 제압당한 이후 그에게 강한 성욕을 느낀다. 이후 여자화장실에 폭탄을 숨기던 ‘퍼피디아’를 발견하고, 이를 방관자는 대가로 잠자리를 요구한다. 이렇게 ‘흑인 여성에게 당하는 성적 페티시’가 있는 그가 백인 남성으로서의 우월감을 주장하는 지배 집단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가입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얼마큼 자신의 영달을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얼마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가입하고자 '유색 인종과의 잠자리'라는 오점을 제거하려 자신의 친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 분)'를 제거하려는 모습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4.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 타인의 목숨과 자유를 무시하는 그는, 자신이 그토록 소속하고 싶었던 ‘크리스마스 모험가’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혁명이 추구하던 가치를 억압하던 그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오점으로 분류되어 제거되었다는 사실은, 작중 등장한 혁명이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 했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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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탄 크로스’에 등장하는 이민자 집단은 혁명의 가치가 스며들어 있는 집단이다. ‘퍼피디아’와의 관계로 인해 혼혈 자식이 있다는 소문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출동한 ‘록조’의 압박에도 그들은 유려하게 빠져나간다. 작품은 이 장면을 완벽한 리듬으로 그려낸다. 이는 극초반부를 감싸고 있는 혁명의 낭만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장면인데, 집단의 리더 ‘세르지오(베니치오 델 토로 분)’의 침착하고 낭만적인 모습을 통해 혁명의 본질인 ‘자유’가 여전히 전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6. ‘윌라’는 혁명의 의지를 넘겨받는 존재이다. ‘퍼피디아’와 ‘록조’의 딸인 그는 친모와 친부 모두에게 부정당한다. ‘퍼피디아’에게는 혁명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록조’에게는 개인의 영달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를 구하고자 한 것은 피가 섞이지 않은 아버지 ‘밥(‘팻’의 가명)’이다. ‘밥’ 역시 혁명가였지만, 관성에 젖어 혁명을 했던 시기를 과오라 규정한다. ‘밥’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윌라’를 구하려 한다. 그 이유는 ‘사랑’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를 통해 ‘사랑’, 즉 ‘더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선행해야 함을 다시금 말한다.

7. 이러한 점에서, 마지막 언덕이 반복되는 길에서의 카체이싱 장면은 굉장하게 다가온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반복되는 굴곡 속에서의 추격전은 단 한 번의 제동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생명을 위해 달린 ‘윌라’와, 사랑을 위해 달린 ‘밥’은 살아남지만, 이념을 위해 달린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회원 ‘스미스(토니 골드윈 분)’는 살아남지 못한다. 하나, 이 장면이 혁명을 부정한다고는 볼 수 없다. 친모와 친부 모두에게 모두 부정당해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윌라’에게 ‘밥’ 역시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지만, 그들을 다시 엮어준 것은 역설적으로 ‘프렌치 75’의 암구호이기 때문이다. 이는 혁명의 의지가 새로운 세대로 이어짐을 보여주는 장면임과 동시에, 관성에 싸인 반복적인 혁명의 굴곡에 제동을 가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의도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더욱 드러나는데,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윌라’가 사랑하는 가족 ‘밥’의 응원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일상과도 같이 평온한 이 장면을 통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혁명이 관성에 젖어 과오가 된다 할지라도 멈추어서는 안 되고, 다시금 본래의 가치를 안고 영원히 이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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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화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과 별개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가장 큰 장점은 순수하게 재밌다는 점이다. ‘박탄 크로스’에서의 탈출 장면으로 대표되는 리듬감은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유려하게 흐르고, 블랙 코미디로서 많은 웃음을 관객에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음악과 액션을 통해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은 작품의 매력을 더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영원히 이어져야 하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이러한 방식으로 유려하게 전달하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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