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연의 편지(2025)> 리뷰
0. 새로운 학교로 전학 온 '소리'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적응을 힘들어하던 중, 책상 서랍 속에 숨어 있는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편지에는 학교에 대한 소개와, 반 친구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다음 편지가 숨겨져 있는 장소가 적혀있다. '소리'는 편지를 하나하나 찾으면서 여러 인연을 쌓게 되며, 그 인연을 통해 구원받고 구원하기도 한다. <연의 편지>는 이렇게 '인연'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따뜻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연의 편지’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인연’이다. 인연의 시작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괴롭힘을 당하던 ‘지민(김연 분)’을 위해 ‘소리(이수현 분)’는 용기를 내어 그들을 막고, 이를 통해 '소리'는 ‘지민’과 인연을 맺는다. ‘동순(김민주 분)’은 나쁜 짓을 일삼던 ‘승규(남도형 분)’가 온실에 방화를 하자 분노해 저항하고, 이로 인해 자신을 찾으러 온 ‘호연(민승우 분)’과 인연을 맺는다. ‘호연’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라진 ‘동순’을 찾기 위해서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고, ‘소리’를 위해 편지를 숨겨두기도 한다.
2. 이렇게 쌓인 인연은 서로를 위로하고 구원한다. ‘소리’는 이전 학교에서 있던 일로 인해 상처를 안고 있지만, ‘호연’의 편지를 통해 용기를 내 이를 극복한다. 이는 '소리'가 '수경(이미나 분)' 등 또 다른 인연을 쌓아갈 수 있도록 한다. ‘호순’은 '승규' 등이 '호연'에게 행한 괴롭힘을 방조했다는 죄책감 등으로 고뇌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건 이후 갖게 된 ‘호연’과의 인연을 통해 이를 극복하게 된다. ‘동순’이 점점 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들에게 인연을 통한 구원을 선물한 ‘호연’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소리’와의 추억과, 학창 시절 ‘동순’과의 소중한 추억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얽힌 인연은 서로를 위로하고 구원한다.
3. 더 나아가, 작품은 이러한 ‘인연’이 세상을 더욱 선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그려낸다. ‘소리’에게 보낸 ‘미진’의 편지가 대표적이다. 이전 학교에서 ‘소리’의 용기로 그와 인연을 맺은 ‘미진’은, 전학 간 학교에서 비슷한 일을 겪는 친구를 보고 고민하지만, ‘소리’의 용기 있는 행동을 생각하고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한다. '미진'은 같이 따돌림을 받을 각오를 하고 행동하였지만, 다른 친구들도 ‘미진’에 용기에 동조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이는 ‘인연’이 세상을 더 선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는 장면이다. 동시에, '소리'와 같이 그릇된 일에 대해 그르다고 말하는 용기를 냈던 이들에 대한 감사와 위로를 동시에 표하는 장면이다. '인연'이 이렇게 만들어낸 기적은 순환한다. '소리'의 용기 있는 행동이 '미진'을 구원하고, 또 다른 이를 구원하였듯, 이 편지를 통해 '소리'는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동순’과 함께 ‘승규’의 악행에 맞서기로 한다. 작품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인연이라는 기적이 돌고 돌며 세상을 선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4. 이러한 인연들의 중심에 있는 ‘호연’은 그만큼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다. 작품의 주 소재인 ‘연의 편지’에 친구들이 자신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소중한 친구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지 않게 자신을 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엉켜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된다면 친구들이 자신을 잊도록 편지를 '숨겨'두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친구들과의 '인연'이 머문 자리에 둔 점은 이러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동순’과 ‘소리’ 역시 '호연'에 못지않게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통한 노력으로 숨겨둔 편지를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작품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통해 인연이 갖는 힘을 따뜻하게 표현한다. 특히, 그들의 인연이 다시금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소리'와 '동순'이 '호연'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을 주제곡인 '연의 편지'와 함께 멈춘 화면으로 남겨 굉장한 감동과 여운을 전달하는 장면이다.
5. 다만, 서사의 개연성이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호연’이 ‘소리’에 대해 아주 어릴 적의 기억 밖에 없는데도, 중학생이 된 ‘소리’의 증명사진만 보고 알아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한, 현실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는 가운데 마법이 등장하는 점도 다소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하나, 작품의 OST인 ‘연의 편지’에서 나오는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던 마법의 순간’이라는 가사처럼, 인연은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특히, 작품은 '인연'이 등장인물들을 서로 구원하고 구원받는 소재로 그려내 ‘인연’이 기적과도 같은 마법이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이는 이러한 개연성에 대한 의문이 덜 체감되도록 한다.
6. <연의 편지>는 내내 따뜻한 분위기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서로를 응원하고 위하는 친구들, ‘동순’과 ‘소리’ 간의 몽글몽글한 분위기, 전체적으로 스며들어있는 따뜻한 난색의 느낌이 이러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동시에, 작품의 배경을 소도시로 설정한 점도 이러한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는데, 한국의 소도시만이 가지는 특유의 포근한 느낌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연의 편지>는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해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낸 작품이자, 동시에 이러한 ‘인연’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는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