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국보(2025)> 리뷰
0. 일본의 전통 문화인 ‘가부키’에는 ‘온나가타’라는 역할이 있다. 과거 풍기문란을 이유로 여성을 가부키 무대에서 퇴출시키고, 남성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하면서 만들어진 역할이다. <국보>는 가부키 세계에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좇는, 특히 ‘온나가타’의 길을 걸어가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연기’는 본질적으로 ‘진짜’를 흉내 내는 ‘가짜’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인가 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가진 행위이다. '가부키' 역시 연기 예술이다. 그렇기에 ‘온나카타’ 역시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키쿠오(요시자와 료 분)’가 가부키 무대를 떠난 후 겪는 수모에서 볼 수 있듯 ‘여성’을 흉내 내는 ‘남성’인 ‘온나가타’는 이러한 질문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러한 예술은 무대 위에서는 진짜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가짜이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관객이기 때문이다.
2. ‘키쿠오’는 이러한 질문 위에 항상 놓여있는 인물이다. 그는 예인의 피가 아니라, 야쿠자의 피를 물려받았다. 굉장한 재능을 통해 엄청난 공연을 만들어내며 ‘하나이 한지로’라는 이름을 물려받지만, 혈통을 물려받지 못 한 그에게는 항상 ‘가짜’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키쿠오’에게 유일하게 진짜인 것은 ‘예술’ 그 자체이다. ‘키쿠오’에게 예술은 궁극적인 추구 대상이자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인간 국보인 ‘만키쿠(다나카 민 분)’ 의 공연을 보고 무서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인생의 목표가 되었지만, 그 길을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하는 소꿉친구 ‘하루에(타카하나 미즈키 분)’, 절친한 친구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분)’ 등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예술만이 진짜이다.
3. ‘키쿠오’는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진짜인 ‘예술’을 위해 남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 자신의 사생아를 부정하고, 자신을 사모하는 여인을 예술을 위해 속이는 등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 길 끝에서 그는 친구 ‘슌스케’와 화해하는 등 나름대로의 구원을 얻지만, 자신의 사생아 등 그가 상처를 준 이들은 남아있다. 작품은 이러한 삶이 아름다운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며, 동시에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작품이 말하는 답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키쿠오’가 삶 전체를 거쳐 추구하던 아름다움을 직면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이러한 삶도 아름답다’는 답을 관객에게 전한다.
4. 작품의 두 주인공 ‘키쿠오’와 ‘슌스케’는 각자가 갈망하는 대상이 있는 인물들이다. ‘키쿠오’는 피, 즉 혈통의 부재로 이를 갈망한다. 이는 타고나는 것이고, 근본적인 것이다. 혼자서는 의미 없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가진 이를 보호한다. ‘키쿠오’는 자신의 재능으로 통해 개화하지만, 자신을 지켜주는 ‘피’가 없어 금방 무너지고 만다. ‘슌스케’는 재능의 부재로 이를 갈망한다. 재능 역시 타고나는 것이다. 근본적이지는 않지만 그 자체만으로 빛날 수 있다. 슌스케는 혈통이 있음에도, 재능의 부재로 쉽게 개화하지 못해 절망하고 도망친다.
5. 이러한 두 주인공의 삶은 ‘한’과 ‘승화’로 구성된다. ‘키쿠오’는 ‘피’가 없음에서 오는 ‘한’을 지니고 있다. ‘한지로(와타나베 켄 분)’의 대타로 ‘소네지카 신주’의 ‘오하쓰’ 역으로 무대에 오르기 직전, ‘슌스케’에게 ‘네 피를 마시고 싶다’ 고백하는 부분은 이러한 '한’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피’ 없이도 ‘재능’과 노력으로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내었고, 결말부에서는 몰락 이후 재기의 기회를 얻어 결국 ‘인간 국보’의 자리에 오른다. ‘슌스케’는 ‘재능’이 없음에서 오는 한’’을 지니고 있다. ‘키쿠오’의 ‘도조지의 두 사람’ 무대를 보고 재능의 격차를 느껴 절망하고 도망가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 역시 자존심을 버리고 ‘피’를 통해 가부키 무대로 돌아오고 ‘키쿠오’와 함께, 자신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던 ‘소네지카 신주’의 ‘오하쓰’ 역을 통해 최고의 마지막 무대를 만들어 이러한 ‘한’을 승화시킨다.
6. <국보>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매정함’,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연민’과 ‘정’, ‘사랑’ 등 다양한 감정들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 모든 감정들이 얽힌 것이 ‘삶’이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러면서,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예술’의 극한을 추구하는 ‘키쿠오’라는 캐릭터를 아름답게 표현해 어떠한 삶이든 숭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다소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이러한 메시지를 <국보>는 이를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관객들을 설득한다. 이렇듯 <국보>는 굉장한 아름다움을 통해 어떠한 삶도 숭고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굉장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