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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
청춘의 이름을 생각해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프란시스 하를 떠올릴 것 같다.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젊음으로 충만해진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프란시스 하’는 이렇다 할 결과나 성과 없이 오로지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린 프란시스 하의 이야기다.
다음은 프란시스 하에게 반한 순간들이다.
프란시스 하, 내가 사랑한 캐릭터
1. 소피와 미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프란시스
프란시스 : 우리 이야기해줘.
소피 : 좋아, 우린 세계를 접수할 거야.
프란시스 : 넌 출판계에서 먹어주는 거물이 되고
소피 : 넌 완전 유명한 현대무용수가 되고 난 너에 대한 비싼 책을 낼 거야
프란시스 : 우리가 씹던 걔들도 관상용으로 한 권씩 사겠지
소피 : 그리고 같이 파리에 별장을 사는 거야
프란시스 : 애인도 만들고
소피 : 애는 안 낳고
프란시스 :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도 하고
소피 : 명예 학위도 받고
프란시스 : 잔뜩 받아야지
2. 래비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벤지가 누가 자신을 위해서 음식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자 선뜻해주는 프란시스
3. 소피와의 동거를 끝내고 래비네 집(차이나타운)에 살게 되었을 때 기뻐서 뛰는 프란시스
소피가 없어도 자신이 혼자서 구한 룸메이트라는 것이 기뻤을까.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4. (정말 창고가 좁았을 수도 있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물건을 선뜻 내미는 프란시스
5. 앞날은 생각하지 않은 채 일단 파리로 떠나보는 프란시스. 돌아올 때의 프란시스가 본 파리의 불빛
6. 원래 있던 무용단에서 함께 공연을 하지 못하자 대학 기숙사에서 조교로 일하게 된 프란시스. 복도에서 혼자 울고 있는 학생과 말 없이 같이 있어주는 프란시스
7. 결국 생계를 위해 원래 있던 극단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프란시스의 자유로운 점심시간
8. 자신의 힘으로 집을 마련하고 우편물에 이름을 적으려고 하자 너무 길어 접은 프란시스 하
당연한 말이지만 흑백영화는 컬러가 없다. 컬러가 없으면 컬러영화보다 상대적으로 답답하다. 그런데 프란시스의 말투, 소피에게 집착하는 태도, 자립을 못한 채 방황하는 것 같은 상황, 돈이 없으면 모아야하는데 당장 파리로 떠나버리는 무모함 등등 프란시스의 행동도 함께 답답함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청춘이란 얼마나 답답한 것인가. 당장의 미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보이지 않고 답답한 것이 정상 아닐까? 그래서 이 영화는 컬러 영화였다면 청춘의 답답한 감정을 못 담아냈을 것 같다. 힘들었던 과거는 다채로운 컬러로 떠오르기 쉽지 않으니.
프란시스는 넉넉하지도 않고, 일정한 직업도 없고, 여기저기 룸메이트를 찾는 삶을 살지만 누구보다 솔직한 사람이다. 절친 소피에게 자신의 감정, 서먹함에도 불구하고 반가우면 반갑다고 아쉬우면 아쉽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남자 둘과 함께 살면서 친구처럼 살 수 있는 편안하고 원만한 성격을 가졌고, 기숙사에서 울고 있는 학생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같이 있어주는 따뜻함을 가졌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의 꿈과 겨루다 현실과 타협했다. 바로 무용단의 사무직 일을 하면서 안무를 짜보는 것. 무용단에서 무용수로서의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안무가의 꿈은 이뤘다. 그녀의 안무는 '실수 같아서 좋다'라는 그녀의 코멘트답게 그녀 다운 공연을 할 수 있었고, 결국 자신만의 집을 마련했다.
요즘, 2030의 문화를 분석하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대기업에 취업해도 서울에 있는 집 한 채 사기 어렵다, 결혼은 하고 싶어 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가 지금 더 가난한 이유는 베이비붐에 있고, 20년만 지나면 인구 절벽으로 취업난이 해결될 것이다 등등. 세상 답답한 소리들만 모여있다. 이 영화가 곧 그랬다. 앞날을 모르는 답답한 여자 프란시스는 그러나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녀만의 솔직함으로 친구들을 사귀었고, 다니던 무용단에서 인정을 받았고, 집도 구했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는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 감명 받은 부분이 있다며 (그대로 옮겨적진 못했다) 어렸을 때 파일럿이 꿈이었던 애는 비록 파일럿은 되지 못했지만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고, 작가가 꿈이었던 친구는 출판사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즉, 우리가 강렬하게 원하는 분야가 있지만 재능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이 말이 곧 프란시스이며 프란시스는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 모두가 원하지만 이룰 수 없을 때 그 비슷한 것이라도 이루고 싶은 마음. 청춘에 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프란시스가 우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울법한 상황이 많았는데 그녀는 절대 울지 않았다. 이틀 동안 머문 파리에서 애비를 결국 만나지 못했을 때에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을 꼴딱 새 버리며 늦에 일어나 파리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을 때에도, 무용단에서 더 이상 같이 일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프란시스는 울기보다는 웃으며 일어났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태도는 이것이다.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어도 울기보다는 애써 웃으며 다른 길이 있겠지, 나는 어떻게든 그 일을 할 거야, 하고 말 거야,라고 생각하는 용기.
<결혼 이야기>, <프란시스 하>로 노아 바움백 감독의 팬이 됐다. 그리고 <프란시스 하>, <레이디 버드>로 역시나 그레타 거윅의 팬도 됐다. 올해 영화제 자원봉사를 하며 느낀 점을 이 글에도 적고자 한다. '나는 지금껏 영화를 가장 많이 좋아해왔고, 영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누구와 견줄 때 뒤처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제를 하면서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구나'라는 감정을 느꼈지만, 포기하지 못하겠다. 아직도 하루에 한 편씩 보고 싶고, 언젠가는 영화평론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싶고, 이동진 평론가를 만나 대화도 해보고 싶다. 이런 마음을 다시금 떠올릴 때 이 영화를 꺼내볼 것 같다.'
영화 리뷰를 쓰며 '오랫동안 꺼내볼 것 같은 영화'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갖는 것도 곧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좋아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본 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애정을 더 쏟아붓고 있다. 좋아하는 영화가 많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추가하자면, 연기를 전공한 내 친구가 쓴 <프란시스 하> 후기에 '나의 이야기'라고 적혀 있었다. 감히 생각하건대 내 친구도 연기를 못하게 된다면 연출 쪽을 생각한다는 말이겠지. 내 친구는 그런 멋진 사람이다. 설령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 분야에서는 다른 일을 꼭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니까. 여러 자극, 주위 사람들이 생각나는 좋은 영화였다. 그리고 나를 믿고자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