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스피츠(SPIEZ)
내가 사랑한 도시 시리즈는 지난 필름 사진을 통해 다녀왔던 도시에 대한 단상을 담은 글입니다.
스피츠는 베른에 있는 작은 도시다. 사실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마을에 가깝다. 스피츠는 스위스 여행 계획에 없던 도시였는데, 스위스 패스 덕분에 가게 됐다. 스위스 패스는 결제한 기간 동안 모든 교통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유람선도 교통에 해당됐는데, 언제든 타고 내릴 수 있다. 다시 타도 금액을 내지 않아도 괜찮았던 이 행동 강령은 스위스 여행에서 즉흥적인 매력을 선물했다.
우리는 튠 호수(Lake Thun)를 둘러보는 유람선을 탔는데, 스피츠라는 마을이 멀리서 보기에도 아름다워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매우 작은 마을답게 둘러볼 곳이 적었기에 마을의 초입만 가보기로 했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예쁜 튠 강을 둘러싼 곳이 있었다. 스피츠에서 꽤나 큰 교회 뒤였다. 키 큰 몇 그루의 나무와 두 개의 벤치를 마주 보는 튠 호수는 정말 예뻤다. 에메랄드 색에다가 제각각 튠 호수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누군가는 작은 카누를 타고, 부두에 서있는 여러 척의 작은 배를 보면서 가만히 있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코니카 빅미니 201로 찍은 사진(위)과 아이폰 7로 찍은 사진(아래)이다. 사진 속 가족의 모습처럼 말없이 계속 보게 되는 튠 호수 풍경. 잊을 수 없는 색감이다. 이곳이 스피츠의 정확히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다녀왔고, 이곳 뒤에 있는 레스토랑 겸 어떤 건물 안에서는 스피츠와 관련한 관광 상점이었다. 여기서 엽서를 구매했다. 글을 쓰다 알게 된 것은 스피츠에는 유명한 성이 있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위치가 비슷해 이곳이 성이었을지 궁금하다.
우리는 이 분홍색 건물에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내려왔다. 아이스크림에 오렌지 한 조각을 넣어주는 게 신기했다.
튠 호수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에서 찍은 사진들.
노란색 색감의 한 호텔, 이야기를 나누느라 열중한 모습의 남자들.
튠 호수 물 색. 청량하다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색.
여행 계획을 짤 때 엑셀을 이용한다. 시간대별, 금액별, 장소별 리스트를 상세하게 적어 프린트한 뒤 여행 가서는 정작 꺼내보진 않는다. 아침에 숙소에서만 꺼내보는 스타일. 엉성한 계획자, 그게 나다. 스위스의 둘째 날에서도 엉성한 계획으로 보냈던 것 같다. 튠 호수를 보자는 마음 하나로 탑승한 유람선에서 돌발적으로 하차한 마을 스피츠. 그리고 찌뿌둥하다며 숙소에 오는 길에 들린 베아투스 온천까지. 계획한 것 하나 없었지만, 계획대로 했던 그린델발트 여행보다 훨씬 좋았다. 즉흥성은 계획을 좋아하는 내게 색다른 경험을 선물했다. 그것을 온전히 느낀 스피츠에서의 기억이 돌아보니 너무나도 소중하다. 이런 여행을 살면서 얼마나 더 해볼 수 있을까. 어딘지모르지만 일단 내린 뒤 가보고 싶은 곳에서 잠깐 머무르다, 또 다른 곳으로 떠나보는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