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을 파헤치다

무엇이 나를 불안 속으로 밀어넣는가.

by 머쉬룸

나는 요즘 불안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불안을 피해 안정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공부를 진득하게 해보기도 하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틀어놓은 영상들을 생각없이 쳐다보곤 한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들땐, 책상옆에 놓인 고전책을 하나 꺼내 읽는다. 그렇게 해도 마음이 불안할때가 있다. 내 마음속 불안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또렷하진 않지만 종종 불안이라는 아이와 마주친다.

단순히 불안이라는 감정만 올라오면 좋겠는데, 이 친구는 꼭 초조함이라는 친구를 데려와 내 마음속에 앉혀 놓는다. 이 두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그때 부터 나는 정신력이 약해진다. 어디에 집중을 해야할지 갈길을 잃어 해야할 것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것들에 집중하지 못하고 곁을 맴돈다.

집을 비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이런 감정일까? 하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혼자 살아서 불안한 감정이 드는거라고 생각해서 결혼이라는 것이 하고싶었다. 혼자산다는건 이렇게나 불안한 일인거구나 했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서,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라니 남겨진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싫어, 세수를 하고 짐을 챙겨 바로 카페로 나왔다.

나오지 않으면 책상에 앉아서, 혹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것만 같았고 그렇게 ‘가만이 있는’ 내 자신을 견디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럼 결혼이 정답인걸까? 결혼이라는 단어를 두고 브런치, 유튜브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는데 모든 글과 영상들이 내게 알려주는 것은 결혼을 한다고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 다는것, 그리고 군중속에서 고독감을 느끼는 것이 혼자있을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보다 더 크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을 보고 있자니 결혼도 해결책은 아닌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직장을 바꿔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다니는 곳이 사기업이니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밤에 긴급전화를 받으며 나라는 사람이 점점 소진되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서 공기업으로의 이직은 어떨까 잠시 고민해보았다.

그런데, 공기업에 가서 과연 내가 행복할까? 생각하니 그에대한 대답은 글쎄...였다.

공기업과 같은 공적인 조직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나도 안나가고, 내가 싫어하는 저 사람도 나가지 않는다.] 인데, 조직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내 사수라면, 내 팀장이라면? 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은 이 선택지를 조금은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한번 공부를 해보는 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 생각은 ‘진행해보기’로 변경되었다.


마지막은 주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불안이다.

누구나 그런 날이 있는듯 하다. 주변인, 특히 친한 지인들과의 비교가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좋은 소식을 들을 때면 정말 기쁘고 축하해 주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문제가 있어서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며 충분히 잘 지내고 있는 내 자신에게 불안감 폭탄을 던져주는 그런날.

특히나 요즘같이 SNS가 활발한 시대에서는 지인뿐만이 아니더라도 익명의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비교라는 것이 분명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자신이 불안할때면 괜스레 그런 것들을 찾아보곤 한다.


주변과의 비교는 가장 쓸데없고 불안감을 증폭시켜주는, 내 마음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나는 그저 나의 길을 만들어 나가면 되는건데 길을 가다가 이쪽엔 뭐가 있을까? 저쪽엔 뭐가 있을까? 하며 주변을 기웃기웃 거리면 불안해진다.

방향과 속도 모두 잃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 방향이 내게 맞는 방향인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미래’를 위한 ‘현재’, 어쩌면 ‘미래에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은 잠시 포기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불안한 것 아닐까.

‘금전적인 풍요로움’보다는 ‘마음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두어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가면 이 불안감이 내 마음속에 조금은 덜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글을 쓸 때 나는 불안하지 않다. 행복감을 느끼고, 글의 조회수가 오르는걸 보며 성취감을 얻는다. 그런데 요 며칠동안 글을 쓰는 시간에 대한 할당순위가 다른 것에 밀려 후순위로 미뤄졌었다.

생각의 숙성과정 없이 그자리에서 써내린 글을 두어번만 읽어보고 바로바로 글을 발행했다. 내면의 고통없이 써진 글은 마음에 들지 않고, 글을 쓰면서도 행복하지 않고 성취감 없는 시간을 안겨다줄 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지고 왔던 나의 내면의 꿈, 물질적인 것을 벗어난 그 꿈은 글쓰는 사람이 되어 1년중에 11개월을 글쓰고 1개월은 글을 위한 휴식을 가지는 삶이었다.

그러니 다른 것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무엇보다 이 ‘글’에 대한 우선순위를 내려놓지 않아야겠다. 결국 나의 삶의 방향에 있어 가장 중요한건 ‘글’ 이라는 걸 알면서도, 글에 대한 관심과 우선순위를 밀어내니 불안의 늪에 빠졌던 거다.


내 자신이 불안하지 않기 위해,
내가 원하는 이상향에 다가가기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