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볼게요
나는 느린 삶을 살고 싶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남들 다 대학교 갈 때 가고 싶었는데 처음 보는 수능이 긴장되었던 나는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1년이 늦은것만 같아 ‘취업을 재수할수는 없어!’ 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학교 시절에는 누구보다 빨리 졸업해서 취업을 하고싶었다. 조기졸업을 목표로 학과공부를 하면서 이것저것 스펙을 쌓기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누구보다 빠르고 탄탄한 길을 걸어갈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는데 그런 삶을 살수록 나는 더욱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며 사는 삶은 나에게 단순히 살아가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건네주지 못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나를 이해하고 나를 믿어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 내 자신을 보며, 느리더라도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는게 옳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느리다는 것은 뒤쳐진 삶이라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다. 유난히 승부욕이 강한 나는 어쩌면 뒤쳐지는 것이 싫어 앞으로 나아가려고 그렇게 아둥바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이란 것은 누가 빨리가는지를 대결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찾아보고 누군가를 만나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내가 성장해 나가고 나를 더 알아가는 과정. 달리지 않고 걸어도 되고 힘들면 중간에 쉬어도 아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조급증을 버리면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이 이전보다 많아진다.
중심이 없던 시절의 나는 주변의 말에 쉽게 휩쓸렸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니 마음의 조급증도 커져 나갔다. 그런데 이 감정이 생겨버리면 할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를 줄여버리고 마음의 불안감도 커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다독인다. 가만히 앉아서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젊고 앞으로도 하고싶은 수많은 것들을 찾아낼 거고, 그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고.
30년동안 잘 살았다고. 연애 몇번 실패해도 괜찮다고. 내가 행복하고, 내 마음이 좋으면 된거라고.
나를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바라본다면 누군가는 내가 뒤쳐졌다고 볼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뒤에 있다고 미래에도 뒤에 있는 것이 아니며, 지금 앞서있다고 미래에도 앞서있음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조금 뒤쳐져 있으면 뭐 어때?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하고 내게 말해준다.
나는 오늘같이 비가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귀기울일줄 알고, 책을 읽을때면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글을 쓸때면 들리는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는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배경음이 되어준다. 나의 생각들 키보드를 거쳐 하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내 생각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기분 좋아진다.
서른이면 진로고민은 더이상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과거의 나도 잠시 스쳐지나간다. 진로라는 것의 의미가 이제서야 깨닳아진다. 한 순간에 정해질 수 없는,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고 체험하는 경험 속에서 나와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
현실이 정한 기준은 지워버리고 내가 바라는 이상향을 위해서 느리더라도 나와 함께 내 자신을 천천히 알아보고 함께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