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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쉬룸 Jan 20. 2024

구남친이 결혼한다.

시차 때문에.

구남친은 스케쥴 근무를 하는 사람이었고, 외국을 나가는 일이 잦았다. 한달 스케쥴을 미리 나에게 전달해주곤 했는데, 가끔씩은 외국에 도착한지 2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날이 있었다. 바빠서 그럴거야, 시차 때문에 그럴거야 라고 나는 나를 다독였다. 

많은 여성들이 여기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바쁘니까, 나를 사랑하지만 바빠서 그런거니 그를 이해하기로 한다. 우리는 많은 날을 함께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많은 시간을 신뢰를 쌓는데에 사용하지도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나 혼자 몰랐던 것 같다. 


애초에 그는 나와같은 진중한 마음없이 가볍게 좋으니 만나보자. 하는 마음이었다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는 그림이다. 


연애에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을까?

서로 좋아해서 시작한 연애이지만 그 시작점에서조차 무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에 정신적으로 더 큰 상처를 입는 것만 같다. 

나는 아직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부족한 걸까 참 많이도 생각했다. 

그가 외국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그날은 한국의 장마기간이었고 유난히 많이 내린 비 때문에 강남 일부지역이 침수되고, 버스가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한국에 있음에도 만날 수 없었다. 비가 온다는 핑계삼아. 우리는 안전을 지키자고 말하며 서로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외국에서 피곤할 때, 자고싶은데 시차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때에 유독 나에게 연락을 많이 했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한국에 오면 드문드문인 연락이 외국만 나가면 많아지니, 차라리 외국에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긴 연애기간동안 우리가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한사람에게 지쳐가면서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 자신에 취해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어쩌면, 각자의 이별을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어서 만나는 거니 다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며, 서로의 미래에 서로를 어렴풋이 그려넣고 이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을지도.

첫눈에 빠지는 강렬한 사랑을 겪고 나면 이후에 오는 감정들은 시시해지곤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한건지, 그의 배경을 사랑한 건지, 그의 외모를 사랑한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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