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보고서

<핵개인사회> 24화

by 신 작가 수달샘

윤호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도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집 안은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확인할 필요도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라에 있었고,

서아방문은 닫혀 있었다.


윤호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학교 상담에서 받은
요약 기록.


문제 행동 없음
정상 범위
개입 불필요


윤호는
그 문장들을
차례로 접었다.


마치
보고서를
정리하듯
반듯하게.


미라가
부엌으로 나왔다.


“왔어?”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는?”


관심처럼 들렸지만
캐묻는 말은아니었다.


“괜찮대.”


윤호는

그렇게 답했다.


그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충분하지도 않았다.


미라는 컵에
물을 따랐다.


윤호도
같은 컵을
꺼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지 않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물을 마셨다.


윤호는
말을 꺼내려 했다.


‘정상 범위래.’

‘문제 없대.’

‘개입 안 해도 된대.’


그 말들이
입 안에서
서로 부딪혔다.


하지만 그중
어떤 문장도 지금 이 집에
정확히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서아는?”


“방에.”


윤호는
서아의
방문을
바라봤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불빛이
깨어 있다는
신호인지,
혼자
버티고 있다는
표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윤호는
문득 생각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괜찮다.
정상이다.
개입할 필요 없다.


그 말들이
누군가를
안심시키는 동안,


누군가는
말할
기회를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윤호는
종이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오늘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미라는
부엌 불을 껐다.


거실은
조금 어두워졌다.


서아의 방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윤호는
자기 방으로 가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이 집에서도 보고서를
써야 할지 모른다는 것.


말하지 않은 것들로만
채워진 보고서
하나를.


✍️ 작가 메모


말하지 않는 선택도
때로는

하나의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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