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날

침묵이라는 가장 능동적인 선택<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19화

by 신 작가 수달샘

교실은
침묵보다
소음이 더 익숙한 공간이다.


교사의 설명,
아이들의 대답,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말이 오가는 속도 속에서
교육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교사는 늘
말을 준비한다.


무엇을 설명할지,
어떻게 격려할지,
어떤 질문을 던질지.


하지만 어떤 날,
나는 그 도구를
내려놓는다.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이의 상태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미 떠오른다.


생각을 뚫어 줄 힌트,
막막함을 풀어 줄 위로,
다시 시작하게 할
작은 격려.


나는
그 문장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말을
가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믿기 위해서였다.


아이의 손은
종이 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연필 끝은
자주 멈췄고

시선은
문제지와 허공 사이를
오갔다.


나아진 것도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 장면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괜찮아.”
“천천히 해보자.”


그 말들로
아이의 공백을
채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장면을

있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아이의 막막함을
어른의 해석으로
덮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교실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과는
다르다.


오히려

수많은 선택을
포기해야 하는

대단히
능동적인 선택이다.


칭찬을
포기해야 하고


재촉을
참아야 하고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붙이고 싶은
본능도

눌러야 한다.


아이의 오늘을
어른의 언어로
포장하지 않는 것.


아이 스스로
혼란과 마주할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선택한

침묵이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교실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정적이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연필이 구르는 소리,
작게 새는 한숨.


아이들이
각자 내는 소리가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그 조용한 질서 속에서

아이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의 앞길을 터주는
가이드가 되기를

잠시
멈추었다.


대신

아이 곁에
하나를 남겨 두었다.

시간.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서
생긴 그 시간은

오롯이
아이의 것이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날은
겉보기에는

성과가 없다.


교사 일지에

적을 문장도 없고

누군가에게
보고할 변화도 없다.


아이는
문제를 다 풀지 못했고

어제와 비슷한 곳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하나의 사실이 남았다.


아이의 하루가
끊기지 않았다는 것.


누군가의 말에
떠밀린 하루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밀고 나간 하루.


느리고
불투명했지만

그 흐름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얻은 전부였다.


어른은
말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가르쳤다는 증거를
문장으로 남겨야

안심한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백 마디 말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 침묵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는

그 무언의 신뢰가

아이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말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다시
침묵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


말의 화려함보다

침묵의 무게를
믿는 사람.


오늘도 나는

말 대신

아이들의 숨소리가
흐르는 교실에

조용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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