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실에서 내가 배운 것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20화

by 신 작가 수달샘

나는
많은 걸 가르쳤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대신
많은 걸 배웠다고는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교실에 서 있는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건넨 것보다
아이들에게서 돌려받은 것이
어쩌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말보다
아이를 멈추게 하는 말이
훨씬 쉽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배웠다.


격려의 말 한마디보다
단정하는 말 한마디가
더 빠르게 아이의 마음에 닿는다는 것.
도움을 주려던 문장이
어느 순간
아이를 주저하게 만드는 벽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말을 아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


아무 말이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정말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끝까지 미루어 보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기다림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의 나는
기다린다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쯤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의 기다림은
비워 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 선택을
의도적으로 미루는 결정이었고,


내가 먼저 나서서
정리하고 설명하고 결론내리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붙잡아 두는 일이었다.


아이의 하루는
어른이 기대하는 것처럼
곧게 뻗어 나가지 않는다.


앞으로 갔다가
되돌아오고,
금세 멈췄다가
다시 엉뚱한 데로 새기도 한다.


어제 되었던 것이
오늘은 되지 않기도 하고,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던 아이가
어느 날 문득
전혀 다른 표정으로 서 있기도 하다.


그런 흐름을

문제라고 부르는 순간,
어른의 기준은
아이의 하루 위에
너무 쉽게 덮여 버린다.


나는 점점

아이의 변화보다
내 조급함을 먼저 보게 되었다.


왜 아직 안 되는지보다
왜 내가
이렇게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지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의 침묵보다
내가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채우고 싶어 했던 말들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설명하고 싶었고,
이끌고 싶었고,
좋은 방향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 안에는
아이를 위한 마음만이 아니라
빨리 괜찮아지고 싶어 하는
어른인 나의 마음도
분명히 섞여 있었다.


이 교실에서
내게 조금씩 분명해진 것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아이보다
한 박자 느리게 가는 것.


아이의 하루를

오늘 안에
완성시키려 하지 않는 것.


말이 나오기 전에
어른의 말을
조금 덜 꺼내는 것.


그 작은 차이가

아이에게는
생각할 틈이 되고,
머뭇거릴 자리이자
자기 말을 찾을 시간이 된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 교실은
지금도 여전히
매일 흔들린다.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멈추고,
나는 그 앞에서
여전히 여러 번 망설인다.


나 역시
완벽해지지 않았고,
지금도 자주
밤이 되면
낮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던 순간,


굳이 바로 답하지 않았어도

됐던 표정들.


나는 아직도
그런 것들을 되짚으며
교사인 나를 다시 배운다.


그래도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전보다 분명해졌다.


아이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하루가
쉽게 부서지지 않게
지켜보기 위해서.


말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이 교실에서
아이를 가르치며
동시에 어른으로서의 나를
조금씩 다시 배우는 사람.


아이를 앞세우기보다
아이 곁에 설 자리를 배우는 사람.


오늘도 나는
완성된 답을 들고 들어가기보다
조금 덜 서두르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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