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되는 자리

part2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21화

by 신 작가 수달샘

아침에 교실 문을 열 때
나는 어제의 아이를
부르지 않으려 애쓴다.


어제의 멈춤,
어제의 한마디,
어제의 작은 신호까지도
문 앞에 두고 들어간다.


문을 여는 순간
공기는 늘 같아 보이지만
실은 매번 다르게 흐른다.
그 미묘한 차이를
나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교실은
기억이 많은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늘만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어제의 웃음도,
어제의 갈등도
이곳에서는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제의 나로
오늘을 시작하지 않는다.


어른만
자꾸 어제를 들고 온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어제의 판단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나는
자리를 먼저 확인한다.
책상의 위치,
창가의 빛,
의자의 간격.


지우개 가루가 남아 있는지,
연필이 굴러 떨어진 자리가 있는지,
아이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 수 있을지를
천천히 살핀다.


아이보다
환경이 먼저
말을 건다.

정돈된 자리 하나가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덜 흔들리게 하고,
어긋난 의자 하나가
생각보다 큰 불편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작은 것들을 먼저 맞춘다.


새로운 하루의 아이는
익숙한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앉아 있다.


몸의 각도가 다르고,
시선이 머무는 곳이 다르다.
가방을 내려놓는 속도도,
인사를 건네는 높이도
어제와 같지 않다.


그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하루의 결을 바꾼다.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아이의 표정이
조금 느리게 열리는 날,
말이 짧아지는 날,
눈이 자주 아래로 떨어지는 날.


그 모든 것이
오늘의 신호다.


나는
말을 고르기보다
속도를 고른다.

앞서가지 않기,
뒤처지지 않기.


설명보다 먼저
기다림을 두고,
지적보다 먼저
여유를 남긴다.


그 사이에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맞춘다.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
말과 침묵 사이의 간격,
개입과 기다림 사이의 균형.


그 균형은
정해진 답이 아니라
매일 새로 조정해야 하는
하나의 감각이다.


Part 1(20화까지) 에서
나는 기다림을 배웠다.


멈추어 있는 시간을
억지로 밀지 않는 법을,
아이의 속도를
내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Part 2에서는
그 기다림이
매일 다시 필요하다는 걸
배운다.


어제의 기다림은
오늘의 정답이 아니고,
어제 통했던 방법이
오늘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다시 선택한다.


기다릴 것인가,

다가갈 것인가,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기다림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다.
아침마다
다시 고르는 태도다.


아이도
오늘 완성되지 않았고,
나 역시
완성된 어른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만들어지는 중이고,
여전히 배우는 중이며,
여전히 틀릴 수 있는 존재다.


그래도

이 자리는
다시 시작된다.


같은 교실,
같은 자리,
같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다른 하루가
조용히 펼쳐진다.


나는
어제의 판단을
정답으로 삼지 않는다.


오늘의 아이를
처음 보는 얼굴로
마주하려 애쓴다.


이미 알고 있다고
단정하지 않고,
이미 판단했다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그 대신
다시 묻고,
다시 보고,
다시 기다린다.


그게
이 교실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오늘의 다른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으로,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려 애쓰는 사람으로,


완성되지 않은 나로
완성되지 않은 아이를
다시 만나는 사람으로


오늘도
교실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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