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18화
같은 말을
같은 톤으로 했는데
도착지는 달랐다.
“지금 여기까지 해보자.”
어제의 아이에게는
붙잡아 주는 말이었고,
숨을 고르게 해 주는
짧은 쉼표 같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아이에게는
멈추라는 신호처럼
들린 모양이다.
아이의 어깨가
아주 잠깐 굳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말이 닿는 순간은
대개 표정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눈빛은 버티고 있었지만
손끝은 멈추어 있었고,
등은 보이지 않게
조금 더 단단해졌다.
나는
그 말을 회수하지 않았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미 도착한 말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은 입을 떠나는 순간
상대의 시간 위에 내려앉는다.
그 이후의 해석은
온전히 아이의 것이다.
대신
나는 내 자리를
조금 옮겼다.
아이의 정면이 아니라
옆으로.
정면은
평가처럼 느껴질 수 있고,
시선은
압박이 되기도 한다.
말은 같았지만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자
공기의 밀도도 달라졌다.
아이의 손은
다시 움직였고,
속도는 느렸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 느린 움직임 속에
나는 작은 안도를 보았다.
그때 알았다.
말의 문제가 아니라
도착의 문제였다는 것을.
어른은
좋은 말을 준비하려 애쓴다.
정확한 표현을 찾고,
상처가 되지 않을 문장을
고심한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같은 말이
다르게 들리는 날이
더 많다.
아이마다
오늘의 문턱이 다르고,
어제의 상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격려가,
다른 아이에게는
재촉이 된다.
나는 그날 이후
말을 고치기보다
말이 닿는 자리를
더 살피게 되었다.
조금 떨어져서,
조금 비켜서,
조금 늦게.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부담되지 않는 거리,
스스로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여백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날 무렵
아이는 문제를
끝까지 풀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간에 던지지도 않았다.
그 차이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그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아이마다 다른 도착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으로,
말보다
한 박자 느리게 서 있는 사람으로,
오늘도
고요한 교실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