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17화
아이의 이름이 바뀌면
교실의 풍경도
단숨에 달라질 것 같지만,
정작 아이가 머무는 자리는
늘 그대로였다.
창가에 비치는 햇살의 각도,
책상과 책상 사이의
좁다란 간격,
매일 마주하는 칠판의 높이까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견고한 구조 속으로
오늘의 새로운 아이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새로운 아이는
이전의 아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멈춰 세웠다.
말이 느려
침묵이 길던 아이 대신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아이가 왔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던 아이 대신
생각보다 몸이 먼저 튀어 나가는 아이가
그 자리에 앉았다.
나는
책상 앞의 아이 위로
이전의 아이를 겹쳐 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비교라는 잣대는
아이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처럼 보이지만,
실은
본질에서 가장 멀리 돌아가는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아이의 첫 하루는
대개 어른들에 의해 과장된다.
교사의 성급한 기대와 불안이
아이의 사소한 행동을
실제보다 더 크게
부풀려 해석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질문을 줄이기로 했다.
섣부른 평가는
내일로,
혹은 그 너머로 미뤄두었다.
“왜 그랬니?” 대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를 택했다.
아이는
의자를 덜컹거리다 멈추었고,
번쩍 들었던 손을
다시 내렸으며,
무언가 말을 시작했다가
끝내 매듭짓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 파편들 사이에서
나는 오히려
나의 속도를 점검했다.
혹시 내가
아이보다 앞서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조급함이
아이의 등을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같은 자리에
다른 아이가 찾아오면,
어른은
자신의 교육 방식이
과연 옳았는지
다시 시험받는다.
하지만
이 교실 안에
완벽한 정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단 하나의 원칙만이
곁에 남았다.
‘아이보다
딱 한 박자만
느리게 걷기.’
그 원칙은
아이의 돌발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지 못했고,
드라마틱한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의 교실을
불필요하게 흔들지는 않았다.
하루가 저물 무렵,
아이는 무거운 가방을
고쳐 매고
교실 문 앞에서
아주 잠시 멈춰 섰다.
끝내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문턱에서
발을 멈추었다는 사실 하나로
오늘의 만남은
충분했다.
같은 자리,
하지만 전혀 다른 아이.
그리고
그 생경함 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무수한 하루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의 이름이 바뀌고
계절이 수없이 변해도,
내가 서 있어야 할 위치만큼은
크게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고요한 교실에 선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