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16화
이 일이
언제까지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쌓일수록
그 질문은 점점 더 자주 떠오른다.
아이가 느린 날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며칠로 이어질 때,
어른의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지친다.
기다림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기다리지 않으면
어른이 아닌 것 같고,
버티지 않으면
책임을 저버리는 것 같은
날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 있을지.
확신이 생겨서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아이에게서
분명한 변화가 보였기 때문도 아니고,
이 일이
반드시 의미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기 때문도 아니다.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명이라는 말은
너무 단단해서
때로는
사람을 더 쉽게 다치게 한다.
다만
오늘 하루만 놓고 보면,
아직은
여기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오늘만큼은
도망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에 가깝다.
아이의 하루는
오늘도
완성되지 않았다.
끝까지 가지 못한 문제,
중간에서 멈춘 생각,
끝내
말로 나오지 않은 문장들.
연필은
종이 위에서
몇 번이나 방향을 바꾸고,
답은 끝내 적히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내일로 넘어간다.
나는
그 넘어감을
막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미완을
오늘 안에
완성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하루를
어른의 기준으로
억지로 닫아두지 않기로 했다.
미뤄진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른은
끝맺음을 좋아한다.
이야기가 닫혀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가
정리되고,
노력과 성취가
연결되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야
어른 자신도
하루를 버텼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교실에는
닫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훨씬 많다.
매번 끝까지 가지 못해도,
결론에 닿지 못해도,
그 자체로
하루가 지나가는
이야기들이다.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유지된 하루다.
아이는
자리를 지키고,
나는
그 곁에 서 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조용히
하나 더 쌓인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게 전부이기에
충분하다.
그래도
나는
이 자리에 남는다.
아이에게
완성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완의 어른으로
함께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다.
아이보다
앞서기 위해서도,
아이를
끌어당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같은 속도로
같은 하루를
지나가기 위해서다.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더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른의 말은
쉽게 남고,
아이의 하루는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아이의 속도를
앞서가지 않고,
어른의 불안을
먼저 덜어내며,
하루를
하루로
남겨두는 사람으로.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분명히
여기 서 있어도 되는 사람으로
교실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