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15화
그날도
아이에게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연필은 여전히 느렸고,
말은 적었고,
수업은 중간중간 멈췄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달라진 건
아이보다
나였다.
나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지난주보다 뒤처진 건 아닌지,
그동안 습관처럼 해 오던 비교가
조금 줄어 있었다.
아이가 멈추는 순간에도
나는
‘왜’부터 떠올리지 않았다.
왜 지금 멈췄는지,
왜 또 여기서 막히는지.
대신
‘지금’에 머물렀다.
지금 이 아이가
여기까지 와 있다는 사실,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연필을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는
아이의 변화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
보여줄 수 있는 근거,
설명 가능한 진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결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욕심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른인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아이의 속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조급함이
기준이 되어 버린 날들이
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날의 나는
아이를
조금 덜 바라봤다.
대신
교실 전체를
조금 더 보았다.
아이 하나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자
교실의 소음이
조금 덜 거슬렸고,
수업의 흐름도
덜 급해졌다.
아이들 각자의 속도가
하나의 풍경처럼 보였고,
그 안에서
굳이 하나만
앞세우거나
뒤처지게 만들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아이는
그 변화를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혀 몰랐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날의 교실이
조금 숨 쉬기 쉬워졌다는
사실이었다.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는 일은
아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어른의 기준을
낮추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서 답을 찾기보다
내가 얼마나
조급해졌는지를
먼저 살피게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느리고
조용했지만,
그게 문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그 아이의 하루가
그 아이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를 바꾸기 전에
어른이 먼저
속도를 바꾸는 사람으로,
오늘도
교실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