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아침
아침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왔다.
아이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교실도
평소와 같았다.
나는
괜히 아이를 먼저 찾지 않으려 애썼다.
밤에 했던 생각들이
아침까지
아이에게 묻어 나오지 않게 하려는
작은 조심이었다.
아이는 자리에 앉았고,
가방을 열었고,
연필을 꺼냈다.
그 장면은 너무 익숙해서
어제의 밤이
마치 과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아침은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허탈함을 남기기도 한다.
밤새 고민했던 선택이
아침에 바로 확인되지 않을 때,
어른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멈춘 것이 맞았는지,
내가 기다린 것이 옳았는지,
어제의 결심이
오늘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하지만 교실은
어른의 밤을
기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오늘의 공기를
먼저 마신다.
수업은 시작되었고,
아이의 손은
여전히 느렸다.
어제보다
눈에 띄게 나아지지도 않았고,
확연히 나빠지지도 않았다.
나는
그 모습 앞에서
괜히 기준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밤의 질문을
아침의 잣대로
들고 오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른의 불안은
언제나
숫자와 비교를 원한다.
어제보다,
지난주보다,
다른 아이보다.
하지만
아이의 하루는
그런 기준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아침은
실패가 아니다.
적어도
아이의 하루가
어른의 불안으로
덮이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아이에게
어제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오늘의 목표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날의 아침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
아이에게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고,
나에게는
흔들림을
조용히 접어두는 연습이었다.
어른이 먼저
아무 일도 없던 얼굴로
서 있어야 하는 날이
분명히 있다.
아이보다 먼저
안정된 표정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밤의 질문을
아침까지 끌고 오지 않기 위해,
어제의 흔들림을
오늘의 교실에
겹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실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