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에서 흔들린 밤
교실 밖으로 나오면
흔들림이 멈출 줄 알았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지면
나도 함께 조용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흔들림은
교실에만 남아 있지 않았다.
퇴근길엔 늘 같은 풍경이 있었다.
신호등, 편의점 불빛,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저녁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만 한 박자 늦게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들어오면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섰다.
일은
이미 학교에서
다 마무리하고 왔는데,
머릿속에서는
수업이 아직
종을 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은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일은 끝났고
기록도 남기지 않아도 됐는데,
마음만 계속 교실에 머물렀다.
아이의 하루가
머릿속에서
조용히 반복됐다.
교사는 종종
아이보다 늦게 무너진다.
아이 앞에서는
표정을 정리하고,
목소리를 고르고,
다정한 문장을 고른다.
그런데 혼자 남는 순간
그 다정함이
내 안에서 방향을 잃는다.
다정했던 말들이
갑자기 불안으로 바뀐다.
‘혹시’라는 말이
모든 문장 앞에 붙는다.
혹시 더 나빠지면,
혹시 내가 잘못하면,
혹시 누군가 알아차리면.
나는
그 ‘혹시’들 때문에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연락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불안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확인받아야 할 대상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그날 밤에서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연락도, 기록도,
어떤 정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자
숨이 길게 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교실에서의 기다림은
아이를 위한 것이지만,
교실 밖에서의 기다림은
나를 버티게 하는 시간이라는 걸.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를 약속했다.
내일은
‘어제보다’를 기준으로
아이를 보지 않겠다고.
그리고
‘오늘의 아이’를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만나겠다고.
교실 밖에서 흔들리는 밤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아직
그 아이의 하루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흔들렸던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오면
교실 문은 또 열린다.
나는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 대신
흔들림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교실 밖에서 흔들린 밤을 지나
교실 안에서
다시 조용히 서는 사람으로.
(3월부터 화·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