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12화

다시 흔들리는 날

by 신 작가 수달샘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 다음 날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날의 아이는
다시 느려졌고,
다시 멈췄고,
다시 말이 없었다.


연필은 종이 위를 오래 맴돌았고
문제는 중간에서 끊겼다.

나는 괜히 전날을 떠올렸다.
그 한마디가 무언가를 바꿔놓았을 거라는
기대 같은 것.


하지만 교실은
기대를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의 속도는
어제의 용기와 오늘의 컨디션을
같은 선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어제보다 못해 보인다는 생각
순간 스쳤다.


그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전진을 기준으로 아이를 재단하는 순간,
기다림은 곧 실망으로 바뀐다.
어른은 진전이 보이면
곧바로 다음 단계를 상상한다.
이미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흔들렸다.
말을 더 걸어야 하나,
어제의 말을 다시 확인해야 하나.


하지만 아이는
가능성으로 살지 않는다.


오늘의 컨디션으로,
오늘의 속도로
하루를 건넌다.


나는 전날과 같은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날의 말은
어제의 아이에게만
유효했을 뿐이다.


그날의 나는
말을 줄이는 대신
자리를 지켰다.
아이의 옆이 아니라
아이의 뒤에서.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는 종이를 접었다.
끝내 다 하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쉬움이 먼저 남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됐을 텐데’라는
생각이 따라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패배감이 크지 않았다.


내가 흔들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직선이 아니다.

앞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다시 멈춘다.


그 흐름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한 날,
나는 다시
내 선택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의 하루가
뒤로 간 것처럼 보여도
그 자리에 함께 남아
흔들림을 견디는 사람으로
오늘도 교실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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