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11화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 날

by 신 작가 수달샘

그 말은 예고 없이 나왔다.
쉬는 시간도 아니었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이의 손에는 여전히 연필이 있었고,
나는 교실 뒤쪽에
다른 아이의 공책을 보고 있었다.


교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수업의 흐름도 끊어지지 않았다.


“선생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부름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를 확인하는 듯한
낮고 조심스러운 부름이었다.


나는 바로 다가가지 않았다.
고개만 들고
아이를 보았다.


아이와의 거리를
일부러 좁히지 않았다.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이거…

어제보다 조금 나은 것 같아요.”


그 말은 정답도 아니었고,
확신도 아니었다.
비교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살펴본 뒤
조심스럽게 꺼낸
확인에 가까운 말이었다.


나는 크게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칭찬도, 해석도, 평가도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이
결과로 변질되지 않게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꼈구나.”


그 말만 남겼다.
아이의 판단을
다시 아이에게
돌려주는 말이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종이를 보았다.
그 뒤로
추가 설명은 없었다.
질문도,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교실은
이전과 조금 달랐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내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 날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대부분
아무 일도 없던 날들 사이에서
조용히 나온다.
기록되지 않고,
주목받지 않고,
금세 잊힐 수도 있는 순간이다.


그 말이
용기였는지,
습관이었는지,
그저 우연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말이
요청이 아니라
보고였다는 사실이었다.


어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설명을 요구받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말할 수 있었다는 것.


나는
그 말 하나로
그동안의 선택이
완전히 옳았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교실의 선택은
늘 뒤늦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다만
그 말이 나오기까지
불필요한 말을
덜 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싶었다.


앞서 나가지 않았고,
미리 해석하지 않았고,
아이의 말을

대신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의 말을
끌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사람으로
오늘도 교실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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