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환경을 먼저 바꾼 날

part2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23화

by 신 작가 수달샘

아이를 바꾸지 않기로 한 날은
의외로 책상부터 건드리게 된다.


그날의 아이는
문제 앞에서 자주 멈췄다.


손이 느린 것이 아니라
시선이 자꾸 흩어졌다.


나는 말을 꺼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 묻기 전에
이미 교실이 먼저
답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자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용히 스쳤다.


창가 쪽 빛이
유난히 강했다.


아이의 종이는
그 빛을 그대로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글자 위로 번지는 밝음이
시선을 오래 붙잡지 못하게 했다.


아이는
문제를 못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한 칸 옮겼다.


설명도 하지 않았고
이유도 붙이지 않았다.


의자는 잠시 삐걱거렸고
책상은 낯선 각도로 놓였다.


아이는
몸을 다시 맞추느라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종이를 바로 놓고
연필을 다시 쥐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뒤로
연필은 종이 위에 머물렀다.


속도는 여전히 느렸지만
시선은 더 이상 떠나지 않았다.


멈춤은 있었지만
끊어짐은 없었다.


아이의 하루가
조금은 덜 흔들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른은 쉽게
아이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집중력,

의지,

태도.


하지만 교실에서는
원인이 아이 바깥에 있을 때가
더 많다.


빛의 방향,
자리의 위치,
소리의 흐름 같은 것들이


아이보다 먼저
아이의 하루를 흔든다.


그날의 변화는
기록으로 남길 만큼
크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사소한 조정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하루는
그 사소함 덕분에
끝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날 이후
질문 하나를 더 갖게 되었다.


이 아이가 아니라
이 자리는 괜찮은가.


아이를 고치기 전에
교실을 먼저 의심해보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개입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배웠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의 속도를
아이에게서만 찾지 않기 위해

오늘도
교실을 먼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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