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이 정도면 됐다.〉18화
특별히 기억에 남길 장면은 없었다.
눈에 띄는 사건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만한
하루도 아니었다.
다만 하루하루가
조금씩 더운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그 기울기를 거슬러 서 있기만 해도
이미 충분히 힘이 드는 계절이었다.
예전의 나는
여름을 끝까지
견뎌내야 하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흐르는 땀을 참고,
지치는 순간을 숨기고,
아프지 않은 얼굴로 지나가야
제대로 보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늘
여름의 끝에서는
조금 지쳐 있었다.
버텼다는 사실보다
무리했다는 흔적이
먼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조금 달랐다.
모든 날을 같은 힘으로 살지 않았다.
힘이 남아 있는 날에는 조금 더 움직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속도를 낮추는 쪽을 선택했다.
끝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날에는
거기서 멈췄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는
그대로 두었다.
덜 아픈 쪽을 고르는 일이
예전처럼 미뤄야 할 선택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선택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그 선택들은
여름을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여전히 더웠고,
여전히 지치는 날은 있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게 해주었다.
예전처럼
하루를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어디선가 주저앉는 대신,
중간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걸을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게 했다.
여름을 버텼다는 말은
대단한 성취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주 조용한 사실에 가깝다.
나는
하루를 덜 미워했고,
스스로를 덜 몰아붙였고,
필요 이상으로 나를 태우지 않았다.
그 정도의 버팀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름의 끝에서는
조금 다르게 남아 있다.
크게 이겨낸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단단해진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은 상태로.
여름의 대부분을
나로서 지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았고,
늘 같은 모습도 아니었지만,
그 흔들림을 포함한 채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조금 선선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온도가 아니라,
하루를 대하는 마음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덜 급해질 것 같았다.
여름을 버텼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다.
그 정도면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오늘의 나는
이 정도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