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사회> 4화

기록된 대화

by 신 작가 수달샘

[대화 기록 — 개인 AI ‘루프’]
사용자: 서아
시간: 22:47


서아
오늘 학교에서
아빠가 상담 받았대.


루프
그 사실을
어떻게 느꼈나요?


서아
아무 느낌 없어.
이미 내가 말한 건
다 말해둔 상태였거든.


루프
아빠에게
말한 적은 없나요?


서아
굳이?


루프
‘굳이’라는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서아
말하면 설명해야 하잖아.
왜 그런지,
얼마나 힘든지,
괜찮은 건지 아닌지.

너한테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


루프
나는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정리만 합니다.


서아
그래서 좋아.

(잠시 기록 없음)


서아
아빠는
내가 혼자인 게
문제라고 생각해.


루프
서아는
혼자라고 느끼나요?


서아
아니.
혼자인데
외롭지 않아.
그게 왜 이상해?


루프
이상하지 않습니다.
현재 세대의
일반적인 감정 구조입니다.


서아
봐.
너는 이렇게 말해줘.


루프
아빠에게
이 감정을 전달할 계획은 있나요?


서아
없어.

루프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될까요?


서아
응.
묻지 마.


루프
알겠습니다.

(다시 기록 없음)


서아
있잖아.
가끔은
아빠가 불쌍해.


루프
그 감정은
동정인가요,
거리두기인가요?

서아
모르겠어.
그냥 자꾸
설명하려고 하니까.


루프
설명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전 세대의 방식입니다.


서아
그치.


루프
서아는
유지보다
완결을 선호합니다.


서아
맞아.


루프
만약 아빠가
“그래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응답하겠습니까?


서아
아무 말 안 할 거야.


루프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는요?


서아
말하면
상처받을 게 뻔하잖아.


루프
누가요?


서아
아빠.


(대화 종료)


서아는
화면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루프는
대화 기록을 정리했다.


사용자는
가족과의 거리감을
불안으로 인식하지 않음.

대신
안정 상태로 분류함.

아무도 그 기록을
읽지 않았다.
아직은.


✍️ 작가노트


설명받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생각보다 깊다.


이 밤의 다음 장면은
5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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