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을 쓰지 못했다
윤호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파일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개인 AI 상호작용 윤리 가이드라인 초안〉
커서는 첫 문장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윤호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이 문서를 몇 번이나 써봤지만,
오늘은 시작이 되지 않았다.
그가 써야 할 문장은 너무 명확했다.
개인 AI는 가족 관계를 대체하지 않도록
감정 개입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그 문장은 정확했고, 논리적이었고,
그동안의 윤호와도 어울렸다.
하지만 그 문장을 쓰는 순간
윤호의 머릿속에는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불 꺼진 거실.
닫힌 방문들.
아무도 부르지 않은 미라의 이름.
그리고 대화 기록 속,
서아의 문장.
말하면 상처받을 게 뻔하잖아.
윤호는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가이드라인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윤호는 알고 있었다.
이 문장이 보호하려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라는 걸.
윤호는 문장을 지웠다.
대신, 새로 한 줄을 썼다.
개인 AI는 이미 약화된 관계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다만, 드러낼 뿐이다.
그 문장을 쓰고 윤호는 한참을 멈췄다.
이 문장은 보고서에 들어갈 수 없었다.
너무 주관적이고, 너무 개인적이었다.
무엇보다
윤호 자신이 그 문장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윤호는 파일을 저장하지 않았다.
제출 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그날 밤, 윤호는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한 채
연구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처럼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는 이미 핵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자신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단어를
윤리로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는 걸.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조용했다.
미라는 방에 있었고,
서아도 방에 있었다.
윤호는 불을 켜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
오늘도
이 집 안에서는
서로에게 닿는
어떤 문장도 쓰이지 않았다.
사회에 끝내 제출하지 못한 문장은
결국 부메랑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기록은
10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