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사회>10화

집 밖의 공기

by 신 작가 수달샘

미라는 그날 아침
조금 일찍 눈을 떴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깨워야 할 사람도,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었다.


늘 그렇듯 부엌으로 가려다
미라는 잠시 멈췄다.
밥솥을 열지 않았다.
국도 데우지 않았다.


대신 외투를 꺼냈다.


거울 앞에 섰을 때
미라는 자기 얼굴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화장은 하지 않았다.
머리도 대충 묶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외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나섰을 때
아파트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라는 층수를 누르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놓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결국 1층 버튼을 눌렀다.


집 밖의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집 안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미라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도착 안내판을 올려다봤다.
도착 예정 시간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


그 숫자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


버스를 타지 않고

미라는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평일 오전의 카페는 조용했다.
각자 노트북을 펴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미라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성함 적어드릴게요?”


직원이 물었다.


미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미라요.”


종이컵에 적힌
그 이름을 보며
미라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적어주는 일은
오랜만이었다.


커피가 나왔을 때
직원은 컵을 건네며 말했다.


“미라 님.”


그 한마디에
미라는 잠시 멈췄다.


집 안에서는
아무도 부르지 않던 이름
이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불렸다.


미라는 창밖을 보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이곳에서도 그녀는 혼자였지만
집 안에서의 혼자와는
조금 달랐다.


여기서는
아무도 그녀에게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다.


엄마도,
아내도,

누군가의 중심도 아니었다.


그저
미라였다.


카페를 나서며
미라는 핸드백을
꽉 쥐었다.


집으로 돌아갈지,
조금 더 걸을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집 밖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숨 쉬기에는
조금 더 편했다는 것.


✍️ 작가 메모


역할을 벗은 이름은
생각보다 가볍다.


미라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11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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