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장을 읽은 사람이 있었다.
윤호의 휴대폰이
오후 회의가 끝날 즈음
짧게 울렸다.
알림은 메일 하나였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기획팀.
윤호는 바로 열지 않았다.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사람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메일 제목은 짧았다.
보고서 관련 문의
윤호는 그제야 메일을 열었다.
서윤호 연구원님,
지난주 공유하신 내부 검토 문서 중
일부 문장에 대해 논의 요청드립니다.
특히
‘개인 AI는 관계를 대체하지 않고,
이미 약화된 관계를 드러낼 뿐이다’라는 표현이
외부 발표 자료로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윤호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자신이
보고서에 남기지 못했던 문장.
지웠다고 생각했던 문장.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윤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문장은
윤호 개인의 생각이었고,
윤호 개인의 경험이었고,
윤호 개인의 집에서
태어난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회의실에서
논의될 문장이 되어 있었다.
윤호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파일을 하나 열었다.
빈 문서였다.
커서는 깜빡이고 있었지만
아직
아무 글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윤호는 집을 떠올렸다.
불 하나만 켜져 있던 부엌,
닫힌 방문들,
돌아오지 않던 미라,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서아.
그 풍경이
이 문장의 출처였다.
윤호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지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날 저녁,
윤호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회사 근처를
조금 걸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퇴근하고 있었다.
모두 혼자였고,
모두 괜찮아 보였다.
윤호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는
이미
자기 문장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
집에 도착했을 때
현관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미라는 아직 오지 않았고,
서아의 방 문은 닫혀 있었다.
윤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오늘은
아무에게도
그 메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호는 알고 있었다.
이제
그 문장은
집 안에만
머물 수 없다는 걸.
어떤 말은
쓰인 순간보다
읽힌 순간에
더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