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많고 결정은 없는 자리
초등교사는
많은 것을 책임진다.
아이의
안전,
학습,
관계,
하루의 분위기까지.
교실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은
결국 교사의 이름으로 묶인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다.
그건 이상하지 않다.
아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그 다음이다.
책임은 많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규정은
이미 정해져 있고,
절차는
미리 만들어져 있으며,
판단은
늘 사후에 검토된다.
교사는
현장에 있지만,
기준은
현장 밖에 있다.
교실에서의 선택은
대부분
즉시 이루어진다.
아이 앞에서는
회의도 없고,
합의도 없고,
되돌릴 시간도 없다.
지금 판단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커질 뿐이다.
그래서
교사는
그 자리에서 결정한다.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가장 덜 아픈 선택을
고르려 애쓴다.
하지만
그 선택은
나중에
천천히 다시 불린다.
여러 사람의 시선 속에서,
다른 기준으로,
다른 자리에서.
그날 교실에 없었던 사람들이
그 선택을
차분하게 검토한다.
“왜 그렇게 판단하셨나요?”
그 질문은
대부분
확인의 형태로 온다.
하지만 교사는 안다.
그 질문에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그날의 상황보다,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기준이
더 또렷할 때도 있다는 걸.
교사는 설명한다.
아이의 상태를,
그때의 분위기를,
선택의 이유를.
하지만 결정권자는 아니다.
결과를
책임지지만,
조건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자리는
항상
불안정하다.
잘못되면
책임이 된다.
무사히 지나가면
아무 일도 아닌 선택이 된다.
성공은
기록되지 않고,
문제만
남는다.
잘 해낸 하루는
조용히 사라지고,
흔들린 하루만
문장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교사는
다음 날
다시 교실로 들어간다.
어제의 판단이
오늘의 신뢰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도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교실은
결정을 요구하지만,
결정권은
주지 않는 공간이다.
책임은
늘 남아 있고,
결정은
항상 빠져 있다.
그래서 이 자리는
계속
사람을 소모시킨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이 비극은
책임이 커서
생기는 게 아니다.
책임과 결정이
같은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