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할수록 혼자가 되는 이유
초등교사는
보통 말을 줄인다.
잘못 말할까 봐서가 아니다.
괜히 한마디를 더 보탰다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교실 밖의 말은
교실 안의 말과 다르다.
아이들 앞에서는
말이 곧 수업이 되지만,
어른들 사이에서는
말이 곧 기록이 된다.
한 문장은
맥락을 잃고 떠돌 수 있고,
한 표현은
의도와 다르게 남는다.
그래서 교사는
점점 신중해진다.
처음에는
그게 배려처럼 보인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선택이고,
갈등을
키우지 않으려는 태도다.
그래서
말을 고르고,
문장을 접고,
설명을 생략한다.
괜히 덧붙이지 않고,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문제는
그 조심성이
오래 쌓였을 때다.
어느 순간부터
그건
배려로 읽히지 않는다.
회의에서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되고,
대화에서는
의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설명하지 않으려던 침묵은
소극성으로 바뀌고,
신중함은
거리감이 된다.
교사는
잘하려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 이유를
각자 상상한다.
그 상상은
대개
교사의 의도와는
다른 쪽으로 흐른다.
조심스러움은
눈치가 되고,
침묵은
회피로 읽힌다.
나는 종종
누군가의 오해를 풀 기회를
스스로 지나쳐왔다.
괜히 꺼냈다가
또 다른 설명을 요구받을까 봐,
그 설명이
또 다른 기록으로
남을까 봐.
그래서
더 조용해졌고,
조용해질수록
나는
점점 혼자가 되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늘 가까이 서 있지만,
어른들 사이에서는
한 발짝 떨어진 자리.
그 자리는
편하지도,
완전히 안전하지도 않다.
다가가면
오해가 생길 것 같고,
물러서면
더 멀어질 것 같은 자리다.
잘하려는 마음은
사람을
좋은 쪽으로 이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그 마음이
관계를 얇게 만들 때가 있다.
지나치게 조심한 사람은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설명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교사는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
한 발 물러섰을 뿐인데,
그 거리에서
혼자가 된다.
이 비극은
사람을 멀리하려 해서
생기지 않는다.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다
혼자가 되었을 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