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삶과 태도
누구에게나 뭐든지 다 할 수 있을것만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시기가 있다. 그런 '한 때'가 지나고 나면 현실적인 판단 아래 삶을 두고 고뇌하고, 미래와 불안정성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몸부림 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앞으로를 계획하는 (대2병, 제2의 사춘기라고도 불리우는) 어두운 시기 또한 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와 같은 많은 젊은이들은 세칭 수저론과 같은 담론에 좌절하기도 하고, 삶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으나 결국 태어나 치열하게 살아온 본인에게 측은지심을 갖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만능사회를 원망하며 언제나 실재하는 더 가진 자 앞에서 무기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가끔은 본인 탓 나라 탓 상황 탓에 우울해지기도 했다가, 그래도' 잘 해보자' 세상이 공정할 지는 모르겠지만 공정하기를 바라면서 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보자 하고 힘을 내기도 한다. 일상 속의 소소한 것들에서 긍정적 감정들을 느끼고 위안하면서, 또 실로 곁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행복해 하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요즘 20대의 기본정서는 무기력이라고 한다. 꿈을 가지고 총명하게 빛나는 눈으로 사는 주체적인 삶에서, 끌려가는 하루하루를--마지못해 살아가는, 살아 남으려 애쓰는, 삶을 버티고 견디는 어른아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고 했다. 무기력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감히 말하건대 나와 내 남동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긍정을 잃지 않고 사는 편이다. 비가 오는 일요일, 그 태도의 원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중복되는 키워드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에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우리에게 물려주신 자산인 셈이다.
취미를 즐기는 삶
아버지는 우리에게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음악회에 가는 일이 참 흔했다. 집에서도 주요 가전은 스피커였다. 남동생과 나는 악기 하나 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 생각에 악기 레슨을 받기도 했다. 또 어떻게 연주를 감상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연, 음악, 소리에 노출시켜 주셨다. 연주자나 성악가의 표정을 살피고 제스춰도 함께 보면서 어떻게 섬세한 감정표현을 하는지, 전체적인 무대 장악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음악을 듣고 나서 아버지가 표현하는 감상평은 묘사가 정말 훌륭한데, 공유하며 또 모방하며 보다 풍부한 감상을 하게 된 것 같다. 음악이 표현하려는 바를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알려 노력하여 보다 더 감상에 젖을 줄 안다. 그렇게 음악으로 위로받고 음악으로 흥이 나는 삶을 살게 해주신 것은 삶에 대한 회의가 들 때, 누구도 곁에 있지 아니할 때, 참 큰 힘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스키 수영 골프 테니스 등을 배웠다. 형편이 넘쳐서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보다 나은 실력으로 즐기라고 레슨을 받기도 했다. 자전거를 못타던 나에게 마스터를 시켜주겠다며 공원에서 몇 시간씩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탈 줄 알아야 나중에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면서 아버지는 지치지를 않으셨다. 수행평가를 잘 받아보겠다고 늦은 밤, 집 앞 운동장에 나가 농구 슛 넣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살면서 삶 속에 컨텐츠가 다양하고 풍부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삶에 대한 긍정의 태도
"세상에 중요한게 돈만 있는게 아니다. 잘나도 잘난체 말고 겸손하라, 늘 배워라 누구에게든 배울게 있다."고 말해주신 것이 지금에서 참 힘이 된다. 많은 대화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고 최고가 되는 것보다 어떤 성과든 무얼 하든 나는 네 곁에 있고 너를 지지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주셨기에 우리에겐 언제나 정서적으로 든든한 빽이 있었다. 가족애, 남매애, 반려자와의 사랑과 우정 등을 몸소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들 즐기면서 서로 사랑하며 살자라고 메시지를 주신 아버지 덕에 우리는 오늘도 세상에 발을 내딛는 데에 힘을 얻는다.
나는 미래의 자식들에게 어떤 멋진 유산을 잘 남겨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케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