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유럽살이도 어느덧 6개월 차

한국은 편리하고 유럽은 편안하다

by 미카엘라

SNS사용 중에 주워들은 말.

한국은 모든 것이 편리하고, 해외살이는 몸이 불편한 대신 마음은 편안하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학사를 하고, 해외에서 석사와 첫 근무경험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다가 남편근무지로 인해 유럽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덧 북미에서의 내 첫 해외생활도 10년 전 일이 되어간다.

당시에는 아이나 가정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구성원으로, 엄마로 한국 vs 해외 산다는 것을 비교할 일이 없었는데, 근래 한국에서 어린이집 보육을 맡기고 해외에서 새로운 기관에 보육을 맡기어 보니 여러 생각들이 든다.


기초 교육을 한국에서 받았던 나는 꽤나 공부를 잘했다. 전교 1등, 과학고 루트, 고교 조기졸업, 명문대, 또래 친구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성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경쟁구도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 혹은 무의식 속 깊이 자리잡음이 있었는지 우습게도 재력도, 재테크도, 심지어는 자녀 양육도 남들보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욕심과 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본질은 퇴화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도 돌도 안된 아이를 두고 값비싼 브랜드 육아용품, 가구, 교구, 명품 의류, 전집, 영어교육재료 등을 경쟁적으로, 선구적으로, 참 많이도 구매했다. 한마디로 우리 아이가 옆의 아이보다 비싼 옷을 입도록 하고 더 많은 교구를 더 빨리 갖도록 하는데 집중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돌도 안된 우리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질까 하는 불안이나 공포도 있었던 듯 하다.


유럽에서 아이와 눈 맞추고 살을 부비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다 쓸모없었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든다.


물론 여기서도 저출산, 외동이 흐름이다 보니 아이들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교육을 누리도록 부모들이 애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만큼 경쟁적이지는 않다. 뒤처짐에 대한 공포가 크지도 않다.

어쩌면 내가 이탈리아 주류 구성원이 아니며, 현지에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적극 비교할 준거집단이 없어져 버려서일 수도 있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반년의 시간 동안 이태리에 거주하며 부모와 영유아 자녀 관계를 살펴본 결과 든 생각은, 그저 사랑과 허용, 관심과 눈맞춤, 아이 눈높이의 배려, 아이와의 질적인 시간과 추억이 본질이며, 서비스나 소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부모자녀 간 질적인 시간을 많이 가짐으로써 본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한국은 너무나 편리하다. 아이를 돌도 안된 시점부터 오감놀이, 더 크면 한글놀이, 수학놀이 등 프로그램에 등록해 돈을 내기만 하면 방문수업 선생님이 집에 오고, 영어는 영어유치원에 맡기면 되며, 심지어 과제도 과제튜터링을 따로 붙인다고 들었다. 돌 아기를 대상으로 천만 원짜리 영어전집을 사줄 수도 있고 어린이집 하원하고 몬테소리 기관, 짐보리 같은 체육활동 기관에도 보낼 수 있다. 돈을 지불하면 부모가 품 팔지 않고 아이와 놀아주는 노동까지도 하지 않아도 된다. 공차기마저도 줄넘기마저도 학원이나 과외에 보내면 된다. 대부분은 안 그렇더라 하더라도 키즈카페에 놓고 풀어놓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은 것 같다.


유럽은 너무 불편하다. 키즈카페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체육 사교육은 만 3세가 넘어야 하고 꼭 부모 대동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부모의 노동 시간이 한국보다 적고, 매일 함께 식사하며, 여름엔 한 달, 겨울엔 이 주간의 휴가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부모가 직접 책을 읽어주고, 직접 여러 언어에 노출시키며, 함께 공차기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무언갈 배우도록 품 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같이 수영장과 스키장에 가고, 휴양지에 가 편안한 휴가를 즐긴다. 키즈카페 같은 고자극 집합체는 없어도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아이들이 함께 하고, 문화적인 분위기 자체가 아이를 배제하는 공간이 없다. 아이와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제도적으로 쉽게 이용하도록 물리적 장벽이 없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키즈카페나 '아이만을 위한' 키즈존 공간 말고는 아이와 갈 곳이 많이 없단 이야기가 된다.


유럽은 갈 키즈카페는 없지만 '못 데리고 가는 곳'이 없다. 분위기가 그렇고, 사람들 인식이 그렇다. 박물관, 미술관, 카페, 다이닝, 바 모든 곳이 아기가 갈 수 있는 곳이다. 영유아기 사교육을 위해 부를 선생님이나 기관은 없지만 부모가 직접 아이에게 선생님이, 놀이친구가 되어줄 시간이 많다.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도 영유아기는 정서가 최고, 애초에 교육의 대상이 아니며, 이른 글자 학습도 오히려 창의성과 상상력을 방해한단 이유로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경우가 많다.


육아의 최종 목적은 멋진 인간으로서 자립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존감 높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분위기가, 부모의 뒷받침이 필요할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영유아기 아이를 위해 시간 아닌 돈을 쏟아부었던 나의 과거도 반성됨과 동시에, 모든 일에 비교와 경쟁구도가 가득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영향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해외살이는 특히 유럽살이는 편리하지 않지만 확실히 마음이 편안하다. 아이가 글자를, 셈을 모른다고 불안하지도 않다. 아이 아빠도 한국 근무 시보다 아이와의 질적인 시간을 확실하게 더 많이 보내주고 있다.


끝으로 이태리의 엄마아빠들은 아침 등교 시 교문 앞에서 매일을 자녀를 꼬옥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들여보낸다. 영유아든, 초등 고학년이든, 사춘기 소년소녀든. 바쁜 아침이라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일들을 빠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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