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짜리 장기프로젝트 4개를 맡은 엄마 PM.
나는 무엇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누군들, 부모라면 안 그럴까..마는.
많이 낳아놓은 책임이라설까, 어린시절 그 누구보다 부모님에게 받은 영향력이 컸고 그 영향력이 다른 쪽 방향이었으면 내 유년의 삶은 어땠을까,
이런 상상, 공상, 그리고 방황을 많이 했던 탓일까..
육아를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내 안에 크게 있다는 것을 계속 알아가고 있다.
여튼, 난 아이를 기깔나게 잘 키우고 싶다.
그 시작점은 참으로 경황이 없었다.
물리적인 이유로 아이를 못 낳을지도 몰라서..
아이키우는 일은 이번 생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찾아온 한 생명...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 하는 사이 아이는 태어났고,
그 당시의 난 갓 대학원생이 된 남편을 따라 텍사스 달라스에 신혼살림을 차린 천지분간 못하는 철부지 였다.
그런 내 손엔 딱 2권의 한국말로 씌인 육아서가 있었다. 도처에 깔린 영어로 된 육아책을 읽어나 볼까 했지만, 열자마자 덮었고 그 길로 다시는 열어본 적도 없다. ㅎㅎ 안 그래도 아이 돌보기란 어려운 일인데, 언어장벽에 갇혀 아이의 소중한 시기를 놓칠 수는 없었고, 영어 울렁증이 산후우울증만큼 크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튼 두 책중에 하나는 제목도 잘 기억이 안 나고, 하나는 우리 집 육아계의 전설이 된, 하도 읽고 또 펴놓고 읽고 해서 너덜너덜해진 바로 그 책
'베이비 위스퍼'다.
이 책의 요지는 육아도, 아이를 길들이기 나름이고 신생아를 생후 100일전에 패턴을 잡아놓으면 쭉 그렇게 키울 수 있어서 엄마와 아이가 모두 행복하다는 얘기였다.
배불리 먹이고, 잘 놀다가, 혼자 잘 수 있도록 잠독립을 시키고, 그러다 깨면 또 놀아주다가, 배고파 할때를 잘 간파해 배불리 먹이고, 놀다가 혼자 자게 하고..
뭐 이런식의 패턴을 유지하다가 종국엔 밤 수면 시간을 조금씩 늘여 혼자 통잠을 자게 한다는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 책이 하라는대로 실행, 실패해도 또 실행, 아이가 울어도 같이 울면서 끝까지 실행, 남편이 그러다 애 잡겠다고 만류해도 또 실행, 자나깨나 이것을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집념의 결과 마침내 그녀를 '수면교육'을 성공시켰다.
그 수면교육의 성공은 많은 파장을 가져왔다.
일단, 부부의 시간을 되찾은 우리는
낮에는 잠깐 부모모드 였다가, 밤이 되면 다시 연인모드로 전환을 했다. 먼나라 타국에서 공부를 빙자해서 놀다 만난 우리는 누가 뭐래도 놀길 좋아하는 부부였다. 이 성향에 따라 주위엔 늘 놀고자 하는 지인들로 득실했다. 유학생 동생들, 절친구, 교회친구 할 것 없이 온갖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밤마다 삼겹살파티에, 수다천국에다 술잔치를 벌렸다.
급기야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도 달라스까지 끌어들여 한달, 두달 살기를 하러 다녀갔다.
그 사이 둘째가 들어섰다.
큰 아이 수면 교육의 파장은, 둘째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하나에서 둘이 됐을 뿐 우리의 놀이 밤은 지속됐고, 둘째 아이가 눈이 아픈것 같아 한국으로 급하게 역이민을 한 이후에도, 실업난에 허덕여 부부싸움을 하는 사이사이에도 달라스를 이어 남양주시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셋째, 넷째까지...
큰 아이의 수면교육을 그때 만약 실패했더라면..?
보통의 가정처럼 엄마젖을 물고 자다가 엄마와 함께 자고 아빠는 따로 자게 되고, 엄마없으면 아이가 잠 자기 어려워하고 그런 아이에게 엄마도 맞춤형이 되어 매일밤 부부가 떨어져서 자야 했다면 오늘날의 이 사남매라는 결과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확신을? 해본다.
책으로 배우는 육아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지인이 내게 물은적이 있다.
책 육아를 했다고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정도의 육아는 못 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그나마 책이라도 없었다면 나의 육아는 결단코 엉망진창이었을것이라고 답해 주었다.
베이비위스퍼로 첫째 수면교육을 성공시키면서
얻게 된 파장은 세명의 동생뿐이 아니었다.
바로, 책으로 육아가 된다는 것을 내 면면한 일상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
깨닫게 되니 믿게 되게 믿음대로 행하게 되니 다시 책을 찾게 되고.
이 선순환의 고리가 있기에, 이 지랄맞고, 엄마답지 못하고 좁디 좁은 나라는 그릇 안에서 그나마 사남매는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흔들릴때마다 믿고 찾는 언니처럼, 멘토처럼..
육아책은 나에게 그렇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광명이었나보다.
아이의 연령대에 맞게 내가 해야 할 공부도 다르다.
육아는 완전 최장기 프로젝트다.
왠만한 팀이나 회사에서 3년짜리 프로젝트만 해도 길다고 하는데, 장작 20년짜리 프로젝트를 그것도 4개나 스스로 하겠다고 손 번쩍 들었고..
나는 지금 그 한 복판에 서 있다.
이건 안 하겠다고 무를수도, 도망갈 수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몸서리치게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프로젝트 끝에 크게 남는 것이 없다해도 이것을 해내는 과정 자체가 삶이라는 생각은 든다.
요즘 새삼 육아가 다시 힘들다.
오늘 아침, 얉은 한숨과 함께 전혜성 박사님이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만든다' 책에 먼지를 털고 다시 집어 들어서 품에 가만히 안았다.
그리고 여전히 희망한다. 우리 아이들은 잘 클꺼야.
내가 이렇게 책을 놓지 않고, 정신줄을 놓지 않고
읽고 쓰고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그 마음, 어디 안 가고 우리 아이들 세포에 다 녹어 들어갈꺼야!!라고.
어제 막내딸과 발레를 보러 다녀왔다.
건조한 삶에 어찌나 촉촉한 비와 맛난 자양분같은 시간이던지.. 손뼉치며 좋아하던 막내보다 내가 더 좋았다. 모두모두 예뻤지만, 우아한 한마리 백조갔던 백조 발레리나와 흑조발레리나는 정말 눈앞에서 환타지를 보여주는 것 같은,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꺼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예술의 힘으로..
이제 팍팍했던 마음이 조금 좋아졌다. 다행이다.
그럼 오늘은 밀려있던 출간프로젝트 마무리 일을 봐야지 라고 생각하던 새벽녁 두 아이가 침실을 찾아왔다. 한 녀석은 열이 37.6도 이고 한 녀석은 귀가 아프다고 하며 울었다.
아...!! 나쁜엄마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이의 아픔은 애잔함이 아닌 스트레스.
나는 오늘도, 나의 할일과 아픈 두 아이와 나머지 두 아이를 케어하느라 또 동동거리겠구나...
그치만 이 동동거림 사이사이에 피어날 행복을 나는 예감한다. 다행히(?) 학교를 안가고 병원에 가야 할 아이가 까칠한 아이 아닌 넷중에 모스트 스윗보이라서 그와 까페공부 및 데이트를 하며 소소하게 묻어나올 웃음과 잔잔한 커피향속에 만족을 기대한다.
오늘은 2023년 수능시험날,
23년전 수능 시험날이 떠오른다.
마음 한 쪽이 또 욱신거린다.
지금 이 시간 1교시 언어영역이 끝나갈 시간..
긴장속에 하나하나 문제를 풀고 있을 누군가가 그려진다.
대한민국 수험생들,
실수 없이 자신의 갈고 닦은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도록 두 손 모으는 마음,
대한민국 부모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