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Sep 21. 2020

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긴다.

내가 책 쓰는 사람이고 싶은 하나의 이유


유서 쓰기

유서를 써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어떤 책에서 '유서를 한번 써보면 인생의 진짜 길을 알 수 있다' 길래 써 본 적이 있다. 그때 인생은 뭐지? 나는 왜 태어났을까? 생명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여전히 이런 질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지금도 모르겠고 결국 산자는 아무도 모르는 그 이유 말이다.

이걸 쓰면 내 삶의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기에 갈급함으로 유서를 써보았다. 힘들게 뗀 첫 글자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들에게..'였다. 일단, 유서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로 국한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구나.. 역시 후손에게 나를 남기고 가고 싶은 게 태어난 이유겠구나.  그런데 몇 문장 쓰다 말고 나는 이외의 결론을 내고 만다. '아! 유서를 쓸게 아니라 책을 써야 되겠구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어른들이 얘기하지 않는가 '내 인생 이야기는 책으로 써도 10권이다'라고. 그만큼 인생이란 거대한 집합체를 한 장의 유서로 자손에게 설명해 줄 방도가 나에게도 없었다. 물론 요약본 쓸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 본문이 있고 나서 유의미할 노릇이다. 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엮은 것 그걸 책이라고 하는구나. 그럼 나는 유산으로 자손들에게 내 손으로 쓴 책을 물려주어야겠구나. 내가 꼭 책 쓰는 사람으로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그 다짐 이후로 힘든 적은 있었어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나의 인생 직업, 불혹이 넘어서야 찰떡같이 만나진 작가라는 직함이다.



글쓰기만이 불멸이다.

불멸한 것을 찾아 헤매었다. 아니 무엇을 물려주는 부모로 살아갈 것인가가 진정 화두였다. 네 명의 인생을 이 생에 쏟아놓고 책임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지는 방법이란 게 있을까? 나 자신에게, 그리고 책에게 많이 물었다.

내 나이 불혹, 이제야 더듬거리며 알 것 같은 그 무엇의 끝에는 다시 책이 서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태는 소비자로 읽는 책의 의미였다면. 이제는 생산자로서 쓰는 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작과 중간과 끝에 모두 책이 있다. 진짜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과 엄마가 얼마나 너희를 많이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는지를 엄마손으로 면면히 써서  활자로 묶어낸 책이라는 그 덩어리뿐이었다. 너희와 함께 참 행복했지라고 일갈하기엔 찬란했던 인생이 허무하다. 활자로 남긴 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불멸의 행동이다. 이것을 알아챈 후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쓸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너네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이런 생색의 글쓰기의 총량이 채워지고 나면 나에게서 남에게로 관점이 넘어가는 날이 온다고 한다. 그날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나'로 시작하는 글쓰기의 총량을 열심히 채워야 한다.

그럼 다음 책은 조금 더 멋져지겠지. 그냥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최대치로 나의 엄마를 느끼고 살아가게 해주는 삶.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긴 인생을 살아갸야 할  딸아이에게 실질적인 힘이 되고 싶다. 그 아이의 인생이 힘든 어느 날 엄마가 쓴 책을 쓰다듬고 품에 안고 당당하게 다시 문밖을 나설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분신 같은 책. 그런 책을 안겨준다면 육신은 죽어도 엄마는 책으로 아이들 곁을 영원히 지켜주는 셈이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영원히 사는 방법

좋은 책은 나와 항상 함께 산다. 이사를 하고, 미니멀리즘을 꿈꾸며 책장에 꽂힌 책들을 아무리 덜어내도 끝까지 내 곁에 남는 책이 있다. 여태를 살아남은 책은 앞으로도 내 곁을 지킬 벗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이 모두 스무 살이 넘고 독립을 하고 시집 장가를 갈 것이다. 나는 나의 둥지를 떠나가는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내 정신적인 유산은 들려 보낼 수 있다. 바로 엄마의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책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든 아이들은 그 행간에서 사랑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 엄마의 고유의 향취를 찾아내 읽을 것이다. 그리고 실컷 그리워하고 행복해할 것이다.

자식들 뿐만이 아니다. 내가 살면서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히 곁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서가에 꽂힌 책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나는 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긴다는 말로 바꿔 표현한다. 내 이름 석자가 찍힌 책을 사랑하는 이에게 한아름 남기고 생을 떠날 수 있다면, 이 생은 잘 살았다고 임종에 가까워서 삶에 더 애착하느라 애쓰지 않을 것만 같다.



시간을 영원에 투자한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떼어내어 투자라는 것을 한다. 주식도 사 두었다가 묵혀두고, 부동산도 지금 사두면 시간이 돈을 벌어줄 것이라고 한다. 나도 생을 똑똑하게 살아야 하니 열심히 부동산 공부를 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어서 아이들과 내가 더 행복할까 끊임없이 방법을 연구한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노후가 물질적으로 빈곤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몸하나 건사하기 어려울 가난에 처하게 나를 내버려 둘 리가 없다고 나 자신을 믿게 됐다. 얼마 큼의 부를 이루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물질적인 풍족함을 쫒느라 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희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 내가 생을 다 하고 사랑하는 네 명의 아이들의 곁을 완전히 떠나야 할 그 쯤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았다면 그건 너무 화가 날 것 같다. 엄마가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며 살았는지, 생의 순간순간마다 그 힘으로 살아냈는지 아이들에게 면밀히 전하고 최대한 생색을 내고 싶다.

영원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똑똑하게 구별하기 시작하니 내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아직도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죽은 후에는 알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던져진 삶 속에는 엄마 삶을 보석처럼 빛내주는 네가 있었어.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보람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 정말 있더구나.

품에 가득 안으면 등이 휠것 같은 삶의 무게도 싹 사라지게 해주는 마법 같은 너희들..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이 생을 마감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큰 슬픔으로 떠날 것 같지는 않아..

왜냐면 엄마는 불멸이 되어 너희를 지켜줄 거거든.. 

삶이 고된 어느 날 볼을 감싸는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엄마인 줄 알아. 엄마가 간지럽히면 까르르 웃는 네 그 웃음이 엄마가 이 생을 살아갈 힘이었는데..  너를 감싸는 그 바람은 그 목소리를 그리워 하는 엄마일꺼야.


아가..네가 힘든 일 있을 때 바람으로, 따뜻한 햇살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으로 항상 곁을 지켜줄게. 

엄마가 늘 말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엄마는 떠났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세상인 것 같다고, 그 어렴풋한힘을 믿고 엄마는 살아간다고 얘기했지? 

그 힘은 엄마 육신이 사라졌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란다. 힘차게 신나게 이 한 세상 뛰놀다가 힘든 날이 오면 엄마를 찾으렴. 엄마는 글이 되어 너의 서가 한 편에서 늘 기다릴게. 그리고 엄마를 품에 안고, 가방에 넣고 세상에 나가 신나게 놀아. 그리고 네가 느낀 이 세상을 글로 옮겨서 너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엄마가 되어주렴. 사랑하는 이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키는 엄마 비법 전수란다. 사랑한다. 영원을 다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