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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남매 엄마, 나도 글 선생이다.

인생 최고의 반짝이는 시간, 새벽 글벗과의 삶이 시작되다

by 스텔라

늘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내 안에 문제는 어차피 나만의 것이니 , 그 누구도 이해해 줄 수 없으리라는 단정으로 그렇게 외로운 시간을 오래 보낸 편이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도 그랬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매몰되어 있었다.

그렇게 26년간 다이어리만 써왔다. 그 기록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내공과, 지난 세월을 켜켜이 잘 쌓아두는 추억의 저장고가 되어 주었을지는 몰라도 시간 대비 효율성을 갖춘 행동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뭐 하나 파기 시작하면 그곳만 파는 나의 무작스러운 성향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화가 되어버렸다. 이 수십 년의 쓰기를 블로그에 했거나 브런치에 그대로 옮겨와서 했더라면 나는 이미 책을 여러 권 펴낸 출간 작가가 되었거나 글을 전업 삼아 사는 누군가가 되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뚜렷한 확신이 있다.

막연함에서 확신으로

이 확신은 최근에 새벽 글쓰기 모임을 꾸려보면서 더 선명해졌다. 혼자 써온 시절들에 대한 성찰과 반사작용으로 '같이 새벽에 글 쓰자' 시작된 부. 새. 습(부자 엄마의 새벽 글쓰기 습관) 1기는 시작 첫날부터 도끼로 언 땅을 깨는듯한 충격과 놀라움을 선사했다. 혼자 글쓰기만 오랫동안 해 온 익숙함에 여전히 바깥 글세상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 안전지대를 부수고 나가기가 참 어려워 시작 전날까지 망설였다. 아니하기 싫었다. 내 언어로 내 글이나 쓰고 싶지 다른 사람이 글쓰기 동기부여를 해 주는 에너지가 내 안에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써보지 않은 에너지가 내 안에 있는지 없는지 가늠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한 발을 떼고 나면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왔던 최근의 행보들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배우자의 신청이라는 현실적인 조력과 사랑하는 지인들의 응원으로 겨우 시작한 모임의 첫날 새벽. 일면식이 없는 타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채팅방은 무서울 만큼 조용했다.


나는 간단한 취지와 설명으로 이 모임의 첫 주제를 던져두었고, 에라 모르겠다 라는 생각으로 단톡 방을 덮었다. 그리고 써지지도 않는 내 원고를 끼적이고 있었다. 새벽 5시 내가 큐레이팅 한 필사 글감과 주제문을 던져주는 형식의 이 모임은 아침 7시까지 자신의 글을 인증하고 출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 습관 모임이다. 과거의 내가 어떤 모임에 들어가 있었다면 도움이 되고 좋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기획 해 낸 글쓰기 모임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일지? 새벽에 일어나긴 했을까? 그곳을 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었다.


과연 우리 단톡 방 첫날을 어떤 풍경일까.

이렇게 두근거리고 있는 내 마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시간은 흘렀고 출석체크를 하겠다고 공지한 7시가 되었다. 단톡 창을 열고 일단 노션에 만들어 둔 출석 페이지도 함께 열었다. 그런데? 채팅창에 올라온 링크 글이 한 두 개의 느낌이 아닌데.? 스크롤로 올리고 또 올린다. 언뜻 세어봐도 붙어 있는 글은 계속됐다.

너무나 놀라웠다. 그 조용하던 방에서 10명의 전원이 모두 새벽 5시에 일어나 필사를 하고 자신의 글을 써낸 것이다. 출석부에 한 명 한 명 체크를 하나하나 하면서 괜스레 코 끝이 찡해졌다. 감정조절 능력이 살짝이라도 모자랐으면 모니터 덮고 엉엉 울 뻔도 했다. 기획하면서 생각하기는 했다. 그리고 내가 믿는 소원 다이어리에 쓰기도 했다. 나로 인해 모인 모든 사람들이 글 쓰는 세상에 폭 빠지게 해 달라. 구체적으로 2주간의 미션인 새벽 글쓰기에 '전원 출석'의 신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구체적으로 발원했다.



나 혼자 쓴 내 바람은 그 누구도 알리가 없다. 그런데 이게 되다니. 누군가에겐 소소할 작디작은 새벽 모임에서 나는 비로소 참 인생을 느꼈다. 함께 하는 힘을 믿고 함께 글을 쓰면 뭔가 더 멋진 세상이 보일 것 같은 희망이 하나 둘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누구의 손도 아닌 내 손으로 그런 세상을 정말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벅차오르는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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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미팅하는 설렘으로

아침 7시 설레는 마음으로 채팅창을 열어 출석을 마치면 더 설레는 기분으로 거기에 이쁘게 앉아있는 링크를 하나하나 타고 들어가서 멤버들을 만난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닉네임 말고 실명도 모르는 사이지만 글 속에 그를 실컷 느낀다. 한두 번의 글만으로도 이미 아는 사이가 돼버린 것 같은 이 느낌이 글쓰기 벗만이 느낄 수 있는 에너지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진심의 말들을 건네고 나면 감사인사가 돌아온다. 진솔한 나의 피드백 덕에 내일 새벽도 글 쓸 힘이 났다고. 하루의 시작을 이렇게 글쓰기로 시작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 한다. 모임의 리더가 되는 것의 첫 한걸음을 떼기가 정말 어려웠던 나에게 이 분들의 글은 나에게 하나하나 선물처럼 다가오고 있다. 나의 아주 작은 재능이 누군가의 글쓰기를 한 아이의 엄마의 하루를 뿌듯하게 성장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찬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림이 그려진다.

얼굴은 모르지만 출근 전 나를 깨워 책상에 앉아 내 글감을 기다릴 한 아이의 엄마를 생생하게 상상해 본다. 무엇을 쓸지 몰라 망설이면서 5분 10분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발을 동동 굴러왔던 지난날의 내가 오버랩된다. 그때 '이것 써봐!'라고 던져진 필사 감으로 글쓰기 손 풀기 워밍업을 하고 이어지는 15분간의 내 이야기 쓰기를 휘리릭 해 치운다. 살짝 뿌듯한 마음으로 이를 인증하고, 나의 답을 기다릴 그 마음들을 가만히 느껴본다. 내가 쓴 글이 의미가 있다는 사실만 재확인시켜주는 것으로도 나의 리더 역할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고단한 새벽을 깨워 오롯이 나와 먼저 만나는 시간이 그토록 귀한 것은 나에게만 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같기도 하다.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같이 느끼는 사람은 분명 이렇게 존재했던 것이고 각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뿐 함께 할 구심점이 없었을 뿐.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챙기기, 나의 출근과 퇴근, 그 사이사이 벌어질 크고 작은 일상의 거대 물살을 단단하게 버틸 힘을 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믿는 새벽 글쓰기의 힘이었으니, 그 힘을 전달하고 싶었으니 그게 전달되었다면 그걸로 나는 그녀보다 더 행복해진다.



전원 출석의 신화

오늘 새벽 2주 차 이 놀라움은 계속되고 있다. 한 둘도 아닌 멤버들이 전원 새벽 5시에 일어나 함께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익숙해져 버려 그 안에만 머물고 싶은 강한 저항력을 이겨냈더니 그 보람이 이렇게도 크게 다가온다. 어떤 모임의 최대 수혜자는 그 모임의 리더라는 말 남의 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문장이 이제 나도 쓸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내 피드백과 코치가 누군가에게 글을 계속 쓸 힘, 누군가에게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나 신나는 일인지 모르고 살 뻔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매달렸던 자기 효능감이 새벽 글쓰기에서 더 빛나는 것이 되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다. 언젠가 내 소원 노트에 쓴 '나도 글 선생이 되고 싶다'라는 문장이 오랜 세월 인연과 필연의 씨줄 날줄을 타고 현실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또 하나 너무 좋은 것은 들쑥날쑥했던 나의 새벽 기상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나의 글감을 기다리는 사람의 힘만큼 내 무거운 새벽 눈꺼풀을 확실하게 뜨게 하는 처방전이 없다. 새벽 기상이 절로 되고 일단 일어나서 모니터에 한 글자를 시작하는 순간 그 날 하루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완벽한 삼합

내가 26년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새벽+글쓰기+습관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잘 버무려진 모임이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버렸다. 바로 함께 하는 사람이다. 글벗이라고도 하고 문우라고도 하는 이 사람들 회원 리더는 우리 앞에 달린 이름일 뿐 우리는 모두 똑같은 글벗이다. 글로 서로를 느끼고 소통하고 조금씩 늘어간다.

글을 많이 쓰다 보면 누구나 잘 쓰게 된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내 안에 떠다니는 감정과 생각들을 읽는 사람도 편히 느끼게 공감하는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과 같다. 자꾸 꺼내 표현하다 보면 낯 섬이 익숙함으로 바뀐다. 이 익숙함은 곧 능숙함으로 바뀌고 표현이 능숙해지면 글을 쓰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이 재미가 더해지면 의미 있는 일이 되고, 어느덧 글 쓰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고 손가락이 하는 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과의 만남을 내가 살 수 있는 최대의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이렇게 소박한 나의 일상에 더해진 '새로운 도전'이라는 이름이 나에게 인생 최고의 '글벗'을 선물을 주었다. 이 선물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빛나도록 다듬고 닦아가는 새벽, 요즘처럼 새벽이 좋을 때가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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