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않는 모든 것을 글에 담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당신이 옳다. 정혜신. 해냄출판사. 2018>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저자의 책으로 그중에도 가장 좋아하는 글귀다.
이 문구에 매달려 지난 사 남매 육아기간을 버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성은 나도 내 존재로서만 오롯하게 사는 삶이었고 개별성은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든 육아의 현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개별성 끝에서 만나게 될 나의 보편성은 어떤 모습일지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지독한 고립감을 버텨냈다.
왜 이 문구가 유난히도 가슴에 박혔을까? 난 지구별에 사는 수억만 인구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세상 전부이기도 하다며 내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그 다독거림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이 비슷한 위로의 문장을 찾아 육아와 육아 사이 책 숲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나는 책을 손에 쥐고 겨우 내 보편성을 지켜냈다.
내가 지난 10년간 나의 개별성을 쌓아온 방법
그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와 운동이었다. 네 명의 생명을 돌보는 엄마 역할만으로 버거웠던 내가 그토록 쓰기와 운동에 매달렸던 까닭은 모두 ‘살아내기 위해서’였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남들이 좋다는 것도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내가 견뎌내기 위해 그 시절을 매일 기록했다. 그리고 육아로 내 몸이 이토록 변해가는 것을 인정할 수 없을 때마다 운동을 했다. 그리고 이 개별성이 모두 지나간 후에 나에게 남을 것은 무엇인가? 많이 고민했다. 그 결론이 바로 글쓰기와 운동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 다시 육아를 한다면? 나는 책을 더 적극적으로 읽을 것이고, 더 가열 차게 기록할 것이다. 대신 일기 말고 SNS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쓸 것이며, 운동을 하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등 간단하게라도 기록을 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나의 개별성을 부여잡은 이 스토리가 진짜 내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낳은 내 아이와 함께 있는데 느껴지는 외로움이 낯설다.
육아의 어려움 점 중에 하나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데 육아는 할수록 적응이 안 된다. 외롭지 않게 살려고 아이를 많이 낳았는데, 아이와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외롭다는 아이러니에 빠져 몸서리쳤다. 아이를 낳고 젖먹이고 똥 기저귀 갈아주려고 여태 살아온 사람인처럼 내 존재 가치는 딱 그 이상도 아닌 이하도 아닌 삶이 지속되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자 살짝만 건드려도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외로움이 항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정신적인 생활고를 버텨야만 하는 그 시기에 내가 낳은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후벼 파는 외로움에 당황했던 날. 나는 그날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불행하다는 솔직함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내 다이어리 밖에 없었다. 엄마로서의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어디고 드러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이 외로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게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를 더 두려움 속에 파고들게 했다. 아무리 육아 선배들이 ‘꾹 참으면 모두 지나가’라고 말해도 내 마음속에는 ‘그래, 너네는 지났으니까.’라고 날카롭게 감정의 날을 세우던 그 시간들이 쌓여갔다.
아무리 끝나는 날을 희망 삼아도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이 하루에 목을 매던 날들을 나는 모두 기록했다. 읽고 있던 책에, 쓰던 다이어리에 의지해야만 내가 살아 낼 수 있으리라는 직감이 있었나 보다. 이걸 혼자 기록하지 않고 요즘처럼 블로그에 기록했더라면 내가 더 쉽게 육아의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책 한 권 내려고 10년을 넘게 고군분투하던 세월을 꽤 많이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예상해 보게 된다.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이렇게라도 책으로 기록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그 생각을 붙잡고 매일매일 다시 나의 생각들을 써내려 간다.
엄마의 감정 정리는 쓰기가 답이다.
나는 솔직히 독서량이 많거나, 책을 좋아해서 읽어왔던 사람은 아니었다. 어느 날 나에게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던 것이다.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알 길이 없었다.
그것은 인터넷 검색에서 찾을 수 있는 육아정보가 아니었다,
“생명을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가?”’
“사람은 왜 태어났을까?”
“인생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러한 삶의 성찰에 관한 깊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남루한 내 지식으로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통해 이제 막 아이를 낳아 세 돌까지 키운 엄마 얘기부터 인생 전반에 있어 육아기간이 주는 의미를 처음 이해하게 됐다. 엄마로서 갖춰야 하는 철학, 인생에 대한 고찰을 책을 통해 진지하게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책을 한두 권 읽었을 때는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는 그 자체가 우주라면서? 그럼 그냥 생긴 대로 키우면 되는 것 아닌가? 제법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서른 권 이상 읽자 ‘낳은 대로, 생긴 대로’ 키우는 것이 엄청난 엄마 내공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육아 철학을 세워야 할 시간이었다. 그 책들이 100권 이상 쌓여가자 크고 작은 깨달음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는데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현실로 잡히는 것이 없었다. 내 육아 철학으로 삼고 싶은 감동의 문구들을 접했을 때의 그 감동은 이유식과 기저귀 사이에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분명 어떤 강력한 인사이트를 책에서 받았던 그 순간의 감정적 격동이 있었다는 감각만 남긴 채 내용은 텅 비어 버렸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남김없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써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책을 읽고 난 내 나름의 생각을 다이어리에 꼭 적어두기 시작했다. 매일 빼곡하게 채우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적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어 27년간 매일 다이어리를 쓰던 내공이 육아에 이토록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너무 오랜 습관이라 어느덧 무의식적으로 쓰고만 있었는데 이것이 육아 일상에 하이라이트가 될 핵심 습관이라는 것이 확실히 증명됐다. 그간의 쓰기 습관이 일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육아도우미가 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겪기 전에 전에는 알 방법이 없던 글로 육아하는 이 세상은 내게 최고의 육아 아이템이자 힐링 아이템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끊임없이 읽고 쓰는 명품 습관을 남겼다.
오늘도 나는 육아를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고 귀퉁이에 느낀 점을 쓰세요. 책 한 줄 읽지 않았더라도 오늘 힘들었던 감정을 쓰기로 담아내세요. 만약 혼자 쓰기 힘들면 함께 쓰는 모임에 스스로를 넣어서라도 쓰세요.
특히 육아를 하는 엄마들에게는 쓰는 것만이 남고, 써야지만 복잡한 감정이 정돈된다.
감정을 표현으로 정리를 하는 의식을 한 엄마가 하는 육아와 즉흥적으로 하는 엄마의 육아는 질이 다르다.
우습게도 우리 아이들은 유난히 짜증을 많이 부리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오늘 새벽 글쓰기 못하셨어요?”
훗날 금전과 보상을 요구할 증거가 된다.
흔히 어른들 잘하시는 말씀이 있다.
“와. 네가 이렇게 컸구나? 나 모르니? 내가 너 업어 키우고 똥 기저귀 다 갈아줬잖아”
이럴 때 딱 찾아볼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스타 피드가 있다면 좋겠다. 그럼 진정 감사한 마음이 우러날 텐데.. 키워주셨다는 어른에게 예의 없게 ‘증거 있으신가요?’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어른들이 하는 ‘라테는 말이야’와 ‘역사’의 차이는 ‘증거가 되는 글이 있나, 없나’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과의 행복한 기억을 잘 기록해 두고 싶은 좋은 엄마가 되기보다는 역사의 증거가 되기를 택했다.
나의 육아일지의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나의 고생 담을 생생하게 증명하기 위해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어찌 됐던 동기부여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이들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려고 글을 시작했다가 항상 모자란 엄마로서의 자질을 반성하고 내가 더 공부를 해야 하며, ‘아이들은 죄가 없다’는 말들로 끝을 맺곤 하니까.
기록만이 남는 일이다.
이를 증명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아이 넷을 데리고 엄청 고생한 여행을 증거로 남겼다. 그때 당시 큰 아이가 5살이었으니 그 밑으로 4세, 3세, 그리고 8개월 아이를 동반한 아빠 출장 따라간 어찌 보면 극기 훈련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그때의 고난은 여행 책으로 엮어 집에 두었더니 아이들이 그때의 여행만을 생생히 기억한다. 자기들끼리 그 여행책자를 꺼내놓고 그땐 너 그랬지 어쨌지 하며 그렇게도 즐겁게 대화하면서 깔깔거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행을 한 번만 간 건 애들은 저 여행만 기억하네’라는 생각이 든다.
아깝다. 귀찮아하지 말고 간대로 전부 기록해 둘 걸이라는 후회가 든다. 하지만 어제 일도 기억이 가물거리는 불혹의 내가 지금 하는 일에 급급한 내가 그때를 기억해서 글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기억 속에만 아련한 그 여행담이 소중하지만 불멸의 글로 남겨두지 못했음이 후회된다. 그러니 특별했던 가족 간의 추억은 그때그때 기록으로 남겨두기를 강력 권장한다.
오늘도 육아와 자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엄마들이여, 증거가 있는 것만 믿는 세상에 사는 아이들이다. 생생한 육아의 과정과 엄마의 감정들을 최대한 소상히 남겨주자. 아이들은 세상 어떤 책 보다 엄마의 그 글을 가장 애장 하며 평생 애틋하게 모시고 읽을 때마다 감동을 받을 것이다. 여행기가 아니어도 좋다. 매일 일상에서의 모습들과 엄마의 생각들을 기록해 나가자.
내가 생각하는 ‘낳고 키운 것 생색내기’의 끝판왕은 바로 엄마의 육아일기이다. 아이들은 읽을 때마다 엄마의 감사함을 새삼 크게 느낄 것이다. 게다가 이 자료들은 묶으면 뚝딱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내 책을 세상에 낸다는 출판의 문턱이 이토록 낮아진 마음만 먹으면 내 책 출간하고 저자가 되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이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을 채울 내 육아일기 콘텐츠를 썼느냐 쓰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