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들의 출산 출간 메이트로 살고 싶은 나❤
나는 오랫동안 명함이 없다.
직장과 인연도 없다. 직장은 내가 원하지 않았다 치자. 직업을 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꽤 오랜 시간 동안 소속이 없었다. 왜일까. 하는 일은 엄청 많고, 나는 종일 바쁜데. 왜 나는 직업란에 '전업주부'라고만 써야 하지? 전업주부는 직업란이 쓰긴 쓰지만 자랑스럽지 않다.
이걸 써도 되나? 이것도 직업인가? 손이 오글거려 글자를 휘갈겨 쓰고 빨리 외면해 본 경험 나만 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나에게 직업을 정해주기로 말이다. 울림 있는 작가로 살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 있기에 위대했던 문필들의 종적을 따라가 본다. 사실 그들은 '직업'이라는 것이 딱히 없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문필 연암 박지원도 사실 지금 말로 하면 '백수'였다는 거다. 그저 필이 충만해져 글을 쓰면 문필가였고, 시를 읊조리면 시인이었고, 그림을 한 수 턱 그래 내면 그 즉시 화가가 된다.
김삿갓도 말하자면 백수인데, '방랑시인'이라고 네이밍을 하니 그럴싸해 보인다. 브랜딩의 승리다.
위대한 문필이 내 현주소는 아니지만 결국 '위대한 작가'로 사는 게 일생의 목표니까, 그에 맞는 직업군을 찾아본다. 아니 창조해본다. '출산장려사?' 가정 시스템 메이커? 출간 메이트?
내 진짜 명함은 지금부터다.
정체성이나 소속을 묻는 질문에 '회사원입니다. 어디 회사 사장입니다.' 등의 대답이 자연스럽다.
나 같은 아이 엄마는 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이것이 자기소개를 대신한다. 자기가 브랜드라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업에 얹혀 자식의 머릿수에 얹힌 내 명함 대신 진짜 내 명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이런저런 단상들을 모으다가 고미숙 선생님의 '직업에 이끌려 가지 말고 직업을 만드세요'라는 말씀에 쑥 빠져들어 강연을 듣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탁. 하고 떠올랐던 게 바로 '출산 메이트'‘출간 메이트’다. 잘하는 것이나 잘하고 싶은 것을 직업군의 큰 카테고리로 삼고 창조해 본 직업 분야다. 세상과 차별화된 나만의 가치를 찾으라는데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네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난 일단 아이를 많이 낳아봤다. 수술 3번에 자연분만 1번이 겨우 포함됐다. 아들과 딸도 2대 2로 골고루 심지어 절반은 원정출산 경력이다. 나만이 해본 경험은 눈 씻고 찾아봐도 이것뿐이다.
그런데 다행히 이 경험 조금 자랑스럽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고 해서 조금 자중 중이긴 하지만 한때는 보는 엄마들마다 붙잡고 애 하나 더 낳으라고 부탁, 종용, 때론 협박(?)까지 일삼았다. 하나인 엄마에게는 당연하고 둘째를 가진 엄마에게도 '셋이 딱 좋다'며 열변을 토한다. 요즘 항간에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출산 거리두기’라는 신조어가 생겼다는 소문이 있다. 나와 가까이 접촉했던 엄마들 중 세 명이나 아이가 생겼다는 소문이 나고 나서다. 나로서는 참 기쁜 일이지만 계획하지 않은 엄마들에게는 충격과 공포의 사건 일터이니, 혹시나 일단 나를 피하고 보자라는 엄마들 간의 암묵적 동의 나온 표어다.
같이 아이 낳자.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차고 나온다
이런 구시대적인 무식한 소리를 나라를 위한 것이고 그 가정을 위한 것임을 주장하지만 항간에는 자기 혼자 똥 밟기 싫은(?) 몸부림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던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엄마에겐 둘째를 권장하고, 둘 엄마에겐 셋째를 권한다. 안심하라. 셋 엄마에겐 넷째를 권하진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반드시 하고 싶은 직업 출간 메이트는 내가 책이 주는 교훈과 가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꼭 하고 싶은 일이다. 우선은 나 자신이 현대판 다산 정약용 선생님처럼 책을 많이 펴내는 다산 작가가 되고 싶다. 내가 나로서의 존재감을 가장 강력히 발산하는 방법이 글쓰기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쓰기를 멈춘 적이 없고 앞으로도 멈출 것 같지는 않다. 내 삶의 여정들을 매일 써내려 가다가 중 읽는 사람이 도움이 되는 내용을 모아 한 권에 담으면 책이 된다. 대신 누군가에게는 교훈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지. 즉 책을 내고 싶으면 책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먼저다. 공식적으로 내 이름 석자 새긴 첫 책도 없지만 내가 꿈꾸는 원대함은 다산 작가라는 카테고리에 머물고 있다.
나만 책을 많이 낸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 내 꿈은 아니다.
저자로 사는 삶을 지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엄마 작가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가슴에 원고지 한 뭉텅이를 품고 살아간다고 주장하는 나로서, 책 쓰라는 잔소리만 하는 대신 실제로 그 마음에 품고 있는 원고지를 쉽게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종용과 추천으로 얻은 새 생명을 두고, 어느 단 한 명도. "그때 괜히 하나 더 가졌어.."라는 식의 말은 들어본 적 없다. 나의 출산 장려 후기는 하나같이 "아이 하나 더 생긴 것 되게 힘들어. 진짜 되게 많이 힘든데, 그 힘듬보다 더 예뻐서 또 잊어버려. 그러고 보니 그때 언니의 강력한 푸시(?) 아니었음 얘는 세상에 없을 뻔도 했는데. 얘 안 낳았으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봐." 이런 종류의 후기 수도 없이 많이 들어봤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코웃음 칠 수도 있다. 무슨 애 낳는 것이 장난도 아니고, 그런 걸 권하는 것도 웃기고 권한다고 안 할걸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맞다. 그런데.. 진짜 좋은 건 진짜 좋은 사람에게 권하게 된다. 그리고 진짜 그 동생들이 내 권유만으로 아이를 낳는 바보들이었을까?
그 안에 이미 들어가 있는 생각, 하고 싶은데 한 발짝의 용기가 더 필요했던 일에 "할 수 있어, 언니도 했어. 그래도 넌 연연 연생은 아니잖아?" 나를 바닥에 깔아 용기를 주고 덜덜 떨고 있는 그들의 손을 살짝 잡아 주었을 뿐이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책을 내놓고 ‘괜히 책 썼어’라고 후회했다는 저자 얘기는 내 평생 들어보지를 못했다. 혹시 알고 있다면 제보해주기를 바란다.
중매는 잘 못 섰다가 낭패 보는 일이 많다.
좋은 일 하려고 했다가 '그때 그 연결이 내 이번 생을 망쳤어..라는 원망 들을 수 있다. 가끔 욕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커플도 탄생한다. 그럴 땐 차라리 대놓고 원망해주는 게 낫다. 괜찮은 듯 살거나, 내가 민망할까 봐 그저 참고 감추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괴롭다
그런데, 아이를 권하는 것은 실패 확률 제로다. 그 어떤 엄마가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아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환불이나 취소를 요청하겠는가. 모두 감사하다 하고, 그때 용기를 못 냈으면 이 아이를 못 봤을 생각에 아찔하다고 한다. 그만큼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힘들었던 과거는 다 망각시키고 행복만이 남을 만큼 강력하다. 그리고 책을 내는 것도 실패 확률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책을 내는 것을 산고에 비교하는 얘기들이 많다. 나도 해보니 다섯째를 잉태하고 있는 기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노력이 책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했을 때 이 고통은 모두 달콤한 열매로 바뀔 것이라는 강력한 직감이 책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핀다. 아직 출간 메이트로서의 후기는 없지만 출산 메이트에 이어 컴플레인 0%의 후기를 자랑하는 엄마들의 출간 메이트를 꿈꿔본다.
사랑한다면 권하게 되어있다.
하느님 믿어보고 좋으면 권하고, 맛있는 식당 강추하게 되고, 건강식품 먹고 효과를 보면 약장수 뺨치게 홍보한다. 다단계도 정말 아끼는 사람에게 먼저 권하게 된다. 방향성은 달라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마음 씀의 용도가 같다는 얘기다.
권하는 것이 안 먹힌다면 내가 보기 좋게 살고, 그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따라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보다 더 큰 인생 공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 더 있다고 보태본다.
바로 아이 낳기와 아이 키우기다.
정말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오늘도 과감히 권한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은 것이 바로 내 몸을 빌어 나온 생명체를 품고 그를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네를 사람 되게 만들어, 인류에 쓰임이 있는 인재까지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이 지구에 태어나 가장 의미 있는 일 아닐까?
글도 써보니 나를 치유하는 그 강력한 힘이 나에게만 해당될 리가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글 쓰라고 잔소리를 하게 되고 권하게 된다.
타고난 성미가 곱지 않은 나는 누군가의 연민의 상황에선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유명 인사가 아무리 멋있는 말을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와 닿지 않으면 신뢰가 안 간다. 직접 경험한 깨달음과 그 깨달음이 둘러싸고 있는 존경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 아무리 유명한 인사도 해봤대? 직접 경험했대? 이런 시선으로 보게 된다. 특히 육아와 글쓰기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래서 짧은 언변만 있는 사람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 에너지 덩어리인 책에 유독 감화를 많이 받는다. 책만 썼다고 능사는 아니지만, 책을 한 권 써냈다는 것에 대한 가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지속될 것으로 믿는다.
이런 내가 스스로가 납득이 될 직업을 행하려면, 그러니까 감히 출산과 출간을 장려하려면 본인의 경험이 다양해야 하고, 먼저 매를 맞았던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지난 10년간 자식 욕심이 많은 바람에 몰매를 맞았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혼돈과 아우성의 소용돌이에서 오롯이 홀로 육아와 치열하게 싸워 결국 이겨냈다. 그 힘의 팔 할은 남편과 책과 글쓰기였다.
중요한 것은 출산 출간 둘 다 평생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내 관리 영역에서 많이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고 책을 내는 것도 시작과 동시에 평생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삶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살짝 압박감이 있는 무거운 영역이긴 하지만, 나에겐 안전지대이다. 극도로 효율성을 따지는 내가 아무리 쏟아부어도 손해 나지 않는 영역 두 가지를 찾아낸 것이다. 바로 출산과 출간이다. 버티면 버티는 대로 양질의 것을 쏟아부우면 쏟아붓는 대로 모두 내 것이 되어 남는다. 내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나의 아이들과 나의 책을 보면서 뜻이 같은 사람들은 절로 따라 배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끝이 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나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두 영역이다. 출산과 출간.
물론 육신의 힘을 빌어 많이 낳았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그만큼 더 잘 키워야 한다는 더 크고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 책을 한 권 내었다고 내가 원하는 직군의 작가가 된 것도 아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 중요하다.
나도 갈 길에 구만리나 남았지만 내 글의 어떤 소절은 오늘도 육아와 자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한 엄마에게 가 닿아 특별한 힘을 전해 줄 것이다. 왜냐면 내가 이 힘이 전해질 것이라 강력히 믿으면서, 다산의 기운과 출간의 욕심내는 에너지를 행간에 켜켜이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간단한 방법
첫째, 나 자신을 훌륭한 사람을 만든다. 두 번째, 그런 엄마를 아이들이 좋아하게 만든다.
이 두 가지면 된다는 지론이다. 이 명제를 가지고 지금도 실험 중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책을 쓰자는 권유가 설득력을 갖출 방법
첫째, 나 자신이 좋은 책을 펴낸다. 두 번째, 그런 나를 독자들이 좋아하게 만든다.
모든 정답과 방법은 내 안에 있다.
내가 잘 키운 사 남매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 나도 하나 더 낳아볼까. 용기 낸 단 한 가정이라도 있다면, 그건 소중한 일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내가 책 낸 것이 부러워 나도 책을 써볼까?라는 용기를 내어 책을 냈고 그것으로 인생을 더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출간 메이트로의 100% 완성을 한 것이다.
오늘 하루도 이 인생 목표를 가득 담아 읊조려 본다. 출산하거나 vs 출간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