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의 유서

사랑하는 너를 영원히 지켜주는 엄마의 길

by 스텔라


유서 쓰기

유서를 써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어떤 책에서 '유서를 한번 써보면 인생의 진짜 길을 알 수 있다 ‘길래 한번 써봤다. 그때 인생은 뭐지? 나는 왜 태어났을까? 생명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여전히 이런 질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지금도 모르고 결국 아무도 모르는 그 이유

이걸 쓰면 내 삶의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기에 갈급함으로 유서라는 것을 한 번 써보았다.

역시나, 힘들게 뗀 첫 글자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들에게'였다.

일단, 유서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로 국한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구나. 역시 후손에게 나를 남기고 가고 싶은 게 태어난 이유구나. 그런데 몇 문장 쓰다 말고 나는 이외의 결론을 내고 만다. '아! 유서를 쓸게 아니라 책을 써야 되겠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어른들은 많이 말씀하신다. '내 인생 이야기는 책으로 써도 10권이다'라고.

그만큼 인생이란 거대한 집합체를 한 장의 유서로 자손에게 설명해 줄 방도가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유서를 몇 줄 쓰려고 시도해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인생을 한 페이지로 요약할 능력이 나에게도 없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지 어미로서 생색을 잔뜩 내고 싶은데 종이 한 장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엮은 것 그걸 책이라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유산으로 자손들에게 내 손으로 쓴 책을 물려주어야겠네. 내가 꼭 책 쓰는 사람으로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그 다짐 이후로 힘든 적은 있었어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내가 찾은 인생 직업, 불혹이 넘어서야 찰떡같이 만나진 작가라는 직함이다.


글쓰기만이 불멸이다.

불멸한 것을 찾아 헤매었다. 아니 무엇을 물려주는 부모로 살아갈 것인가가 진정 화두였다.

네 명의 인생을 이 생에 쏟아놓고 책임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지는 방법이란 게 있을까?

나 자신에게, 그리고 책에게 많이 물었다.

내 나이 불혹, 이제야 더듬거리며 알 것 같은 그 무엇의 끝에는 다시 책이 서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태는 소비자로서 읽는 책이었다면 이제는 생산자로서 쓰는 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내 인생 시작과 중간과 끝에 모두 책이 있다. 진짜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과 엄마가 얼마나 너희를 많이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는지 그 감정을 최대치로 전달하고 싶다. 그 감동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엄마 손으로 직접 써서 활자로 묶어낸 책이라면 내 육신이 떠나더라도 책이 화신이 되어 아이 곁을 든든히 지켜줄 것 만 같다.




우리 참 행복했다고 일갈하기엔 찬란했던 인생이 허무하다. 활자로 남긴 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불멸의 행동이다. 이것을 알아챈 후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쓸 수밖에 없었다. 너네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라는 생색의 글쓰기의 총량이 채워지고 나면 나로부터 타인에게로 글의 관점이 넘어가는 날이 온다고 한다. 그날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나'로 시작하는 글쓰기의 총량을 열심히 채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음 책은 조금 더 멋져지겠지. 오늘보다 내일은 한 뼘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마음을 쏟는다. 내 눈앞에 있는 웅덩이를 모두 채워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딸아이에게도 힘든 날이 분명히 오겠지. 어느 날 집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마음을 풀어놓고 엉엉 우는 날이 올 거야. 그럼 그때 책장 한편에 꽂힌 엄마가 남긴 흔적으로 그 아이 머리칼을 쓰다듬고 엄마 목소리인 듯 위로해주고 싶다. 아이가 엄마 책을 안고 실컷 인생의 회한을 토해내다 곧 씩씩하게 눈물을 닦고 당당하게 다시 세상으로 나설 수 있는 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문 밖을 나서는 아이에 가방에, 품 안에 그리고 마음에 따라다닐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기 위해 오늘도 나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이 하루를 활자로 옮긴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영원히 사는 방법

좋은 책은 나와 항상 함께 산다. 이사를 하고, 미니멀리즘을 꿈꾸며 책장에 꽂힌 책들을 아무리 덜어내도 끝까지 내 곁에 남는 책이 있다. 여태 살아남은 책은 앞으로도 내 곁을 지킬 벗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이 모두 스무 살이 넘고 독립을 하고 시집 장가를 갈 것이다. 나는 나의 둥지를 떠나가는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내 정신적인 유산은 들려 보낼 수 있다. 바로 엄마의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책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든 아이들은 그 행간에서 사랑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 엄마의 고유의 향취를 찾아내 읽을 것이다. 그리고 실컷 그리워하고 행복해할 것이다.

자식들 뿐만이 아니다. 내가 살면서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히 곁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서가에 꽂힌 책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나는 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긴다는 말로 바꿔 표현한다. 내 이름 석자가 찍힌 책을 사랑하는 이에게 한 아름 남기고 생을 떠날 수 있다면, 이 생은 잘 살았다고 임종에 가까워져도 삶에 더 애착하느라 노력하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을 영원에 투자한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떼어내어 투자라는 것을 한다. 주식도 사 두었다가 묵혀두고, 부동산도 지금 사두면 시간이 돈을 벌어줄 것이라고 하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다. 나도 생을 똑똑하게 살아야 하고 우리 가족 보금자리가 필요한 시절 그 누구보다 열심히 부동산 공부를 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어서 아이들과 내가 더 행복할까 끊임없이 방법을 연구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이토록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노후가 그렇게 빈곤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울 가난에 처하게 나를 내버려 둘 리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니 아니라는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그때부터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얼마 큼의 부를 이루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호사를 위해 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희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생을 다 하고 사랑하는 네 명의 아이들의 곁을 완전히 떠나야 할 때 내가 못다 한 말이 많이 남아 있다면 그건 너무너무 화가 날 것 같다. 엄마가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며 살았는지, 생의 순간순간마다 어떤 힘으로 견디고 살아냈는지 아이들에게 면밀히 전해 주고 싶다.

영원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똑똑하게 구별하기 시작하니 내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생의 다함이 눈앞에 정해져 있는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며 지금의 마음을 옮겨본다.



다시 쓰는 유서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에게.

아가. 엄마는 아직도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죽은 후에는 알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던져진 엄마 삶을 살아내다 보니 어느 순간 엄마 삶에 보석처럼 빛나는 네가 나타났어.

신기하게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보람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 정말 있더라.

품에 가득 너를 안으면 종일 시달렸던 세속의 풍파도 싹 사라지게 해주는 마법 같은 너. 그 말캉거리던 살성의 느낌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네.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이 생을 마감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큰 슬픔으로 떠날 것 같지는 않구나. 왜냐면 엄마는 불멸이 되어 너희를 지켜줄 거거든.

삶이 서럽고 힘들다 느껴지는 어느 날 따뜻한 바람이 볼을 살살 간지럽히면 엄마인 줄 알렴.

힘든 일 있을 때 바람으로, 따뜻한 햇살로, 어두운 너의 밤을 밝히는 빛으로 항상 지켜줄게.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엄마는 갔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세상인 것 같다고, 그 어렴풋하지만 확실한 힘을 믿고 엄마는 살아간다고 엄마가 자주 얘기했었지?

그 힘은 엄마 육신이 사라졌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란다. 힘차게 신나게 이 한 세상 뛰놀다가 힘든 날이 오면 엄마를 찾으렴. 엄만 너의 책장 한 편에서 늘 기다릴게. 그리고 엄마를 품에 안고, 가방에 넣고 세상을 향해 다시 당당하게 걸어 나가렴.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너의 마음의 소리를 믿고 그 소리에 따라 너의 삶을 만끽하며 살기 바래.

엄마보다 많이 웃고 많이 울고 그리고 많이 사랑하고 살아라. 그리고 엄마처럼 너의 아이들에게도 너만의 사랑의 언어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엄마가 되어주렴.

오랜 세월 사색 끝에 깨닫게 된 사랑하는 이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킬 수 있는 엄마 비법 전수란다.

엄마가 살아보니 세상은 사랑 말고 다른 것은 없단다. 더 많이 사랑하고 넘치게 사랑받고 살아가렴.

그게 우리가 이 생을 함께 한 이유인 것 같구나. 엄마는 육신의 소멸과 상관없이 늘 그랬듯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단다.

keyword
이전 02화육아는 날 것 그대로 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