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부,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우는 진짜 이유
나는 네 아이를 학원을 일체 보내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세운 나름의 교육관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못 보낸 건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교육 가치관'이라는 타이틀에 씌워 합리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어쨌든 아이들을 키우면서 중요한 것의 기준을 따로 세웠다. 그래 봤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영역은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기준은 부모가 세운 가치관대로 생활 속에서 흘러간다.
아직 한 번도 '내가 자식을 키우는데 무엇을 물려주어야 후회가 없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본 적이 없다면 시급한 문제다.
반드시 해야 한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태교부터 하면 가장 좋겠지만 늦더라도 지금이 가장 빠르고 꼭 선결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아이를 키우는 나만의 교육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거창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준과 질서를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일관성 있는 부모' '하나의 판단기준과 변치 않는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육아책을 엄청 읽고 읽은 시간보다 더 오래 고민했다. 내가 배운 바가 없는 영역을 뼈대부터 세워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여겨지는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든 아주 간단한 세 가지의 원칙이 다음과 같다.
전제, 사랑이다.
첫째, 인성이다.
둘째, 독서, 책 읽는 습관이다.
셋째, 영어, 미국 말이 아닌 국제 공용어로서의 의미다.
나는 물론 남편, 우리 네 아이들은 자다가도 툭 쳐서 물어보면 이것을 순서대로 말할 정도로 각인과 세뇌가 되어있다. 그리고 훈육의 기준, 선택의 모든 기준은 위에 설정한 0번부터 1,2,3 세 가지의 항목대로 적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를테면 외출을 다녀왔는데, 숙제는 안 돼있고 집안은 어질러져 있고, 하기로 한 엄마 영어 숙제는 안 돼있는 상태에서 동생들과 싸우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이 경우 엄마로서 지적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이 격양돼서 화가 나면 혼내는 기술이 사라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너와 나의 공동 영역, 아이도 익히 수긍하고 있고 나도 기준점이 되는 '가족 간의 약속'이 필요하다. 이것을 더 발전 시켜면 '가훈'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지을 수도 있다.
영어 숙제를 안 해 놓은 것은 세 번째 조항에, 방이 어지러워져 있는 것은 생활습관에 동생과 싸우는 것은 인성에 포함되어 있으니 순서는 싸움을 중재하고 -> 방을 정리하게 하고 -> 영어공부를 하던지 하지 않았을 때 선택하기로 한 것을 실행한다. 그리고 방을 정리하는 '생활습관'은 크게 봤을 때 인성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그때마다 가르치고 나도 마음에 새긴다. 이렇게 큰 뼈대를 세워놓고 이것에 맞춰서 에피소드별로 하나하나 넣어가는 것이다.
사실, 일상의 모든 것을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지만 가정 규칙의 뼈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를 가져온다. 훈육을 해야 하는 엄마도, 훈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도 기준점 없이는 둘 다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 먼저 공부를 통해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이자 모든 교육의 대전제다. 사실, 이렇게 세운 목차를 기준으로 아이들을 키운다고 다짐하고 나니, 학원을 보낼 시간도 없다.
우리 집 기준의 0번과 1번을 차지하는 사랑과 인성의 영역은 사실, 삶 전체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인성이고 모든 것이 사랑이다.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라고 정해진 영역이 아니라 그냥 인생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성교육만 붙잡고 아무것도 안 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고 꼭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책 읽기 습관과 영어다.
이 두 가지만 엄마표로 진행해도 아이들에게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렇다.
때론 나의 편협한 생각이 아이들의 인생을 잘못 인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아니 사실 거의 매일이다. 내가 가는 길이 맞나 싶은 생각에 수도 없이 흔들리지만, 오랜 고민 끝에 세운 가치관을 엎고 내가 학원비를 아까워하지 않을 엄마로 재탄생할 리는 없다. 다만, 아이들이 더 성장해서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이를 못해주는 부모이고 싶지는 않아서 준비는 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가 아닌 아주 디테일하고도 현실적으로 말이다.
돈이 없니, 철학이니? 사교육을 일절 시키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일침이 가해진 이 질문의 답을 찾았다.
돈도 시간도 없다. 하지만 오랜 공부와 고민으로 만들어 낸 나만의 단단한 기준과 철학이 있다. 나의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나에게 가장 큰 인생의 핵심가치이자 당면과제인데 대충 만들었을 리는 없다.
다만, 유치원생의 비율보다 초등생의 비율이 3:1로 더 높아진 이 시점에 업그레이는 한 번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근 다음과 같이 업그레이드했다.
0번, 사랑이다.
1번, 인성과 체력이다.
2번, 독서와 글쓰기다.
3번, 영어와 수학이다.
체력은 명시해 두지 않으니, 우선순위에서 자꾸 이탈해서 넣어뒀다. 글쓰기는 내가 해보니까 읽을 때보다 쓸 때 더 배워지는 게 많다고 느껴져서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수학은 좀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뼛속까지 인문학인 엄마 아래에서 편향되게 자라는 것에 대한 제1의 증표가 아이들이 수학과 친하지 않게 크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다.
그리고 수학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도가 없었던 엄마가 이제 수학의 참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어떤 꿈의 선택을 할 때 읽기 능력과 영어능력만 갖추면 나머지는 필요에 따라 채워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수학 또한 내 기준만으로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 있어 최근에서야 급하게 추가했다. 거창할 것도 없다. '하루에 문장제 5개 풀기나 연산 10문 제 만 풀고 체크리스트에 기록하면 된다.
이렇게 애써 꾸려놓은 규칙은 실행이 뒷받침되어주어야 의미가 있다. 친절하게 안내해줘도 잘 따라올까 말까 한 아이들에게 엄마가 친절한 교육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협박 비슷한 권위로 눌러 해결하려고 하는 일이 다반사다. 시간의 효율성만 따지는 엄마 밑에서, 엄마 뜻대로 안 하면 소리부터 지르는 엄마에게서 배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괴감이 드는 순간에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앞으로 한 발짝 나가야 한다. 세월은 계속 빠르게 흐르고 아이들은 커가니까.
시간에 등 떠밀려 세월을 사는가 싶은 순간에도 아이들은 커가고 있기에, 엄마 대신 기댈 규칙, 가훈,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시스템을 가정 안에 정착시킨다는 이유로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만큼 호되게 혼내는 일이 많은 내가 보인다. 따뜻하고 단단한 훈육이면 좋으련만 감정조절에 실패한 엄마의 악다구니로 끝나는 일이 많아서 매일 반성이다.
엄마인 나야말로 1번 인성부터 살펴야 하는 시간이다. 인성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코어가 '예절'이라며 그렇게 핏대를 세우며 말하는 엄마가 자기 아이들이라고 예의 없이 소리 지르고 등짝 스매싱을 불사하는 행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것부터 연구해서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깨워야겠다.
'어젯밤엔 엄마가 미안했어'로 하루를 열어야 하는 것이 외면하고 싶은 나의 현주소다.
반성과 사과가 일상이고 선결과제인 엄마는 오늘도 생각한다.
'자녀교육에 기승전결은 모두 부모교육이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렇다고 열심히 사는 엄마에게 죄값을 물을 필요도, 심히 자책할 이유도 없다. 나도 잘해보려다 그런 것이니,
후회만큼 더 잘하겠다 결심 하고 오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한 도전 에너지만 남겨보자.
그렇게 아이와 함께 나도 커가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