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놀이터를 이어가기 위한 아내의 노력
불길하고 싸한 예감에 눈을 떳다.
지금 몇시지? 무슨요일?
새벽 4시였고 일요일이었다. 그 싸한 느낌의 정체는 곧 밝혀졌다. 그가 집에 없다.
제발 아니기를, 이제는 그 악행을 그만 두었기를 바랬는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어둠을 헤치고 얽혀서자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뒤적여봐도 그는 정말 없다.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이런 그와 내가 뿜는 불안 기운으로 일요일 오전의 우리집 풍경은 아주 위태로웠다. 나는 이럴때 내 모든 에너지를 꺼내 그와 싸운다. 싸우는것도 애정이 전제되야 할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 소모의 일이다. 11년차 부부인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할 에너지는 아껴도 이런 에너지는 아끼지 않는다.
아낌없이 싸우고, 있던 약속도 오겠다는 내 손님도 못오게 하고 일요일 오후를 그와 일부러 딱 붙어 지내면서 다시한번 '부부생활 기본규칙'에 대한 참교육을 마친다. 전에 같으면 1박2일은 째려봤을 법한 일이지만 나도 늙고 그도 그럴만한듯, 반성한 듯 하여 그쯤에서 내 안에 있는 '남편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겨우 거두어들이고 다시 맞은 월요일.
작업실에 마주 앉은 그와 점심시간을 1시간 앞두고 열글쓰고 있는 나에게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00가 서울에 잠깐 올것 같은데 이번주 일요일 낮에 우리 뭐 없죠?"
"주말에 약속 잡는 것 싫다고 했잖아요"
"아니, 살면서 주말에 약속에 생길수도 있고, 갈 수도 있는거지요"
(이런.. 그냥 대충 넘어간 내가 등신이지.. 한바탕 욕을 쏟아붓고 나서 일정한 침묵이 흐른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주 일요일 나 약속있어요."
"뭐야...갑자기... 거짓말이잖아요. 누구요 누구?"
"내 자신과요. 만날 사람은 없으면 내 스스로와의 약속은 약속이예요, 아니예요?
"......?"
"타인과 약속이 있으면 나가도 되고 내가 내 자신과 한 약속때문에 주말에도 외출하는 건 안된다는 건
더 불공평하지 않아요?."
나도 마음같아선 주말에 애들이고 할일이고 다 두고 하루종일 서점가서 책읽고, 돌아다니고, 까페에 앉아 멍때리고 싶다. 친청언니네 가서 해주는 밥 얻어먹고 늘어지게 낮잠자고, 찜질방 사우나가서 딩굴거리고도 싶다. 가지말라 한 사람은 없지만 엄마가 없는 부재를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 여태 엄마가 방황이 짙었다가 이제 좀 엄마답게 사는것 같은데 남은 날들은 엄마로서 충실하고 싶은 마음, 남편도 그냥 이 마음과 싱크로율 100% 만들고 싶은 마음. 아... 그냥 온가족 완전체로 같이 매 주말을 보내면 안되냐 말이다.!
그런데 만날 사람이 있는 사람은 나가도 되고 내 스스로를 데리고 혼자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갈 수가 없는 이상한 사회적인 제약, 그것이 우리 가정에까지 침투하는 것에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그에게 따져물었다. 그는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날 사람도 많은 사회적인 사람, 나는 만나자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있다해도 왠만하면 피하고 싶은 내성적인 사람. 우린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공동육아자를 자청한 그가 개인적인 약속으로 자리를 비우는일이 잦아지면 나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일하러 가는 날들도 덩그라니 아이들과 남아 도대체 오늘 하루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버틸까'를 궁리 해야만 하는 내가 지난 육아의 모습중에 가장 서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이유기도 하다.
난 정말 왜 그토록 그의 부재가 싫은걸까? 그때야 그렇다 치치만 아이들이 조금 커서 손이 덜가는 지금도 이렇게 남편이 나가는 꼴을 못 보는 이유가 뭘까? 그냥 혼자 있는 외로움이 싫었던 걸까, 남겨진 기분이 싫은걸까. 그가 비워둔 자리 그대로 내 몫의 할일이 되는게 싫은가.
나는 주말에 가족들이 온전체로 함께 있고 싶다. 평일에도 시간이 자유로워 나와 아이들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주는 그이지만 그것만으로 나를 채우기엔 부족하다, 주말은 주말대로 온전히 아이들 모두와 완전체를 지켜야 한다고 나서는게 그저 나의 고집이고 편향된 성향의 주장일까?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독립적인 나, 남편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왜 이리 의존적인 나인건지.
그는 나에게 안정애착을 주어야 하는 역할의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결혼을 한 것 부터가 그 시작의 첫 단추다. 내가 결국 젊은시절을 탈탈 털어 추구했던 것이 사회적인 성공이나, 부, 명예인줄 알았는데 그 모든것과 맞바꿀 가치는 '나에게 안정감을 준 단 한사람' 이라는 것을 나는 진작부터 예감했다.
나이가 두자리 수도 되기전 9살에 알아버린, 인간살이의 쓸쓸함. 그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모두 친구관계에 집착했다. 대학을 가고 했던 모든 연애관계를 총망라 해보니, 그 속엔 그 상대와의 애정과 추억이 있다기 보다는 '그 상대와 만나고 있는 내 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내가 보인다.
이 얘기를 들은 남편은 사귀는 사이에서 그런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재정의라고 화답한다. 그리고는 또 그 특유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이토록 나는 모든 것이 나의 위주로만 해석하는 '극도의 이기적인 관계성'을 나는 '안정애착' 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다.
나에게 이 안정애착을 평생 가져다 줄 사람이 있을까?
내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라는 느낌이 와야 할텐데..
연애의 기준이 있었냐 물으면 '이 느낌' 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남자사람들을 엄중히 갈랐다 답한다. 어느 정도 관계가 무르익었다가도 이 관계에서 벗어날 것 같은 느낌을 주거나, 혹은 마음의 온도가 달라져 이대로 있다가는 이별을 통보받는 자가 될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은 바로바로 '먼저 이별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선해결했다. 그러니 '단 한번도 차인적이 없는 여자' 라는 나의 연애구력은 사실은 철저한 기획과 관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안 그는 또 고개를 절래절래한다. 자신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기적인 생각, 행동과 마주했을때 그가 습관적으로 하는 모션이고, 나는 이걸 보면 박장대소를 한다.
물론, 부부관계의 기본예의인 '외박하지 않기' '12시전에 행방에 대해 보고하기' 등을 지키지 못한 그의 잘못이 크다. 그건 그도 인정한다. 그런데 그 것을 빌미로 나는 모든 그의 주말을 틀어 막아섰다. 전에는 쿨한 여자로 보이지 못할까봐 결혼 전 관계에서는 하지 못했던 왠만한 집착과 미저리성 행동을 남편에게는 다 한다. 이걸 다 하고도, 나아니면 안 되게 만들어 놓은 우리 부부관계.
나는 세상 모든 관계와 일련의 연결망중에 유독 '부부관계'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연애할 때나 그렇지 결혼해 봐라. 늦게 오면 올 수록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좋을껄?' 이런 말이 나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느 것을 신혼초부터 알았다. '아이 낳아봐. 애 보느라 남편은 우선순위에서 절로 멀어져' 라는 말도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그걸 증명시켜보느라 아이를 넷이나 낳아봤지만 아이넷을 다 합쳐도 남편하나보다 중요하지 않을 만큼 나는 남편과의 시간에만 집착한다. 이런 나를 미저리로 보이지 않으려 나는 안팍으로 나를 가꾼다. 외형으로는 처녀때의 몸매를 유지하면서, 늙을수는 있지만 초라하지 않는 겉모양을 유지하고 얼굴엔 나이들수록 우아한 미소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안으로는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고 책을 쓴다.
'질리지 않는' '배울것이 있는' '뭔가 나의 존재감을 발혀주는' 그런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어떤 친구를 만나거나 반짝이는 것과 비교해도 '아내와 있는 시간이 제일 재밌네' 라는 결론과 만나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나에 가장 큰 성장 동력중에 하나다. 왜냐면 앞으로도 남은 아주 많은 시간을 나는 그와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못견디게 지겨운데도 놀사람이 서로밖에 없기에 억지춘향으로 서로를 견뎌주는 사이이고 싶지 않다. 이것만이 내가 찾아낸 부부의 고도의 몰입과 집중의 사랑에너지로 만들어낸 네명의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고, 한 개인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에 절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헤매고 다니는 그 방황에 너무 오래 살다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선명함속에 살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 그래서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내가 나를 잘 안다는 이 명료함이 어찌나 복잡하고 정신없는 세상속을 헤쳐가는 힘이 되어주는건지 늙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나의 이 명료함이 계속 나에게 말한다. "남편을 계속 구속해!! 대신 현명하고 지혜롭게"
여튼, 책읽고 글쓰는 부부로 늙고 싶다는 한줄의 로망은 나에게 요즘 여실한 현실이 되어주고 있다. 여기에다가 '이게 과연 사람의 인력으로 되는 부분일까?' 싶었던 4남매. 그것도 2남2녀로 순서까지 딸.아아.딸
이런걸 보면 진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나보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자식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것을 할 수 있는 사이. 나는 그것을 부부사이라고 정의하는가 보다. 모든 부부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그 두 사람이 만들어낸 우주가 모두 들어있다.